
‘구~구 구국’ 하며 한 맺힌 울음을 토해내는 산비둘기 소리에 맞춰 진달래는 일시에 꽃을 피워 온 산을 분홍색으로 물들인다. 연둣빛으로 치장한 나무와 숲은 이름 모를 산새들과 함께 봄의 향연을 펼친다. ‘뻐꾹 뻐꾹’ 뻐꾸기의 소리가 이산 저산 계곡을 타고 멀리 퍼져나갈 때, 하얀 찔레꽃은 수많은 야생벌들을 초대하여 꿀 잔치를 벌인다. 아카시 꽃향기가 천지를 진동하고, 밤꽃 향기는 온 동네를 휩쓸고 지나간다. 남쪽나라로 떠났던 제비가 돌아오고, 경쾌한 개구리 노랫소리에 맞춰 조용하던 숲과 들에서 생명의 아우성 축제가 시작된다.
지난 봄 모처럼 고향을 찾아 하룻밤을 보냈다. 봄이면 고향 마을 뒷산에서 항상 울려 퍼지는 뻐꾸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구슬프게 울어대는 산비둘기 소리도, ‘꿩~꿩’ 하며 계곡에서 울려 퍼져야 할 장끼의 세레나데도 들리지 않았다. 언덕 군데군데 하얗게 핀 찔레꽃 향기는 온 동네 퍼지는데, 윙윙거리며 꿀을 찾는 벌들이 보이지 않았다. 동네 집집마다 기둥에 기대어 서있던 토종 벌통도 없어진지 오래다. 노란 민들레꽃으로 치장한 신작로 길을 따라 춤추며 날아다니던 배추흰나비도 사라졌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아침이다. 숲과 들판에서 봄의 축제를 벌이던 그 많은 새와 곤충은 어디로 갔는지.
가만히 보니 농촌 풍경이 많이 변했다. 소나무가 울창한 숲은 밤나무 밭으로 바뀌었고, 참나무와 온갖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섰던 산비탈은 감나무 과수원으로 변했다. 무와 배추가 자라던 곳은 복숭아나무와 매실나무 밭이 되었다. 벼와 보리가 무성하게 자라던 들판은 하얀 비닐하우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감나무 밤나무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로 바뀐 산과 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는 숲과 들판에서 농작물의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와 곤충들을 그냥 두지 못한다. 산언덕과 비탈에는 항공기를 동원한 무차별적인 농약 공중 살포를 실시하여 산림 생태계를 황폐화시켰다. 산과 들판에 쏟아 부은 살충제는 해충을 완전히 박멸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충의 천적과 수많은 곤충을 죽여 생태계를 파괴했다. 잡초를 없애기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한 제초제는 땅 속 세균과 애벌레 등 모든 생명체의 씨를 말렸다. 이제 고향의 산과 들은 생명체가 숨을 쉴 수 없는 침묵의 땅으로 변했다. 애벌레와 곤충이 사라진 숲과 들에 새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시골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던 제비는 수년 년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무분별한 농약의 사용으로 내성이 생긴 해충은 증가하고, 잠자리와 메뚜기 등 제비의 먹잇감이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 제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할 정도로 찾아보기 힘든 새가 되었다.
흐드러지게 핀 들꽃 사이를 윙윙 날아다니던 수많은 야생벌도 찾기 힘들다. 시골 농촌에서 많이 키우던 토종 꿀벌도 최근 5년 사이에 90%가 사라졌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살충제와 제초제의 과다 사용이 주원인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100개 주요 작물 중 71개가 야생벌과 꿀벌의 가루받이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작물이 벌이나 나비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지지고, 그 열매를 사람이 식량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벌과 나비가 없는 세상에 인간은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지성을 갖춘 인간이 원치 않는 몇 종류의 곤충을 없애기 위해 자연 환경 전부를 오염시키고, 그 자신까지 질병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길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저지른 일이다.”라고 환경보호주의자 레이첼 카슨은 수십 년 전에 경고했다.
더 빨리, 더 많이 수확하기 위한 인간의 욕심은 자연을 무참히 짓밟았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사라진 숲은 참으로 썰렁하다. 꿀벌이 찾지 않는 하얀 찔레꽃이 왠지 쓸쓸하다. ‘지지배배’ 제비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농가의 아침은 외롭고 허전하다. 지금 고향은 생명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이 계속되고 있다.
숲이 무성해야 곤충이 살고, 곤충이 살아야 새들이 살고, 새들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자연계는 승자 독식의 사회가 아니다. 지구위의 모든 생물은 나눠먹고, 같이 살아야 하는 운명 공동체다. 모든 생물은 먹이사슬의 고리를 이루면서 공존 공생하는 자연 생태계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이 봄의 침묵을 만들고 있다. 언제 다시 봄의 아우성이 들릴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