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마리아’로 친근한 작곡가 구노는 하프시코드 연주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하프시코드의 현을 튕겨보고 그 소리로 날씨를 예보했는데 적중률이 80% 였다. 옛날 궁궐에서는 궁녀가 거문고를 튕겨 하루 날씨를 예보하는 관습이 있어 그 전담 상궁이 있었다.
아마도 기압의 고저(高低)가 거문고의 여운에 영향을 끼치고 그 여운의 장·단과 청·탁으로 날씨를 가늠했을 것이다. 일제 때만 해도 라디오를 가진 사람이 드물었는데 담배 가게에서 라디오 기상예보를 문전에 써붙여 손님을 끌었다고 한다.
마을의 날씨 예보는 서당의 훈장님 몫이었다. 일월성신(日月星辰) 천기로부터 초목·화초·금수의 생기에 이르기까지 날씨와 연관된 변화를 유심히 보고 달라질 날씨를 가늠하고 있다가 이를 물으러 오는 이들에게 알려 주었다.
이를테면 해의 남북에 흐린 부위를 귀라고 하는데 남쪽 귀는 날을 맑게 하고 북쪽 귀는 비를 부른다. 닭이 병아리를 업으면 비가 오고, 까치가 하늘을 보고 울면 맑으며 땅을 보고 울면 비가 온다. 고양이가 풀을 먹으면 비가 내릴 조짐이가. 거북이가 물 밖으로 나와 남쪽을 바라보면 맑고, 북쪽을 바라보면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적중률이 제법 높았던 모양이다.
또 종소리가 탁하거나 무거우면 비, 맑고 낭낭하면 맑을 조짐이다. 이런 식으로 장·단기 날씨를 미리 아는 체험예보가 꽤 발달했다. 훈장은 그 조짐을 유심히 봐뒀다가 예보하고 집안의 대사나 먼길 떠나는 날을 조정했다는 것이다.
국가 규모로 일기예보를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 프랑스가 처음이었다. 민간에서 사설로 기상을 상품화한 것은 미국의 크리크라는 사람이 그 선구자였다고 한다. 1933년 대서양 비행을 하지 말라는 그의 예보를 무시하고 이륙한 비행기는 추락하고 말았다. 1936년의 대한파를 예보하여 과수 업자의 손실을 막은 것 등이 소문나 기상 재벌로 군림했었다.
강력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턱밑에서 요지부동 버티면서 중부지역 물폭탄이 일주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이번 장맛비는 조각조각 흩어진 구름대에서 국지적으로 폭우를 쏟아붓고 있다. 그러니 기상청 장마예보가 자주 빗나가면서 기상청이 강우량 실황 ‘중계청’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