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내란 중의 하나가 청대(淸代) 중국의 ‘태평천국의 난’이다. 예수의 재래(再來)라고 자칭한 홍수전(洪秀全)이 주도한 이 내란에서 2,3천만명의 인명손실을 보았다. 1864년 7월, 정부군의 남경(南京) 탈환작전에서만도 1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980년 5월 신군부는 5·18광주민주화 운동을 ‘김대중 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민중을 선동해 일으킨 봉기’ 즉 내란음모 사건이라 규정했다. 형법상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斬截)하거나 국헌을 문란케할 목적으로 폭동한 죄’이다. 정권탈취 목적으로 일으키는 반란행위라는 얘기다. 그 수괴를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양형규정이 보여주듯, 형법상 가장 무거운 죄다. 따라서 그 행위를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 없이는 공소를 유지하기 어렵다.

과거 공안통치시대 전가의 보도처럼 쓰였던 내란죄 사건들이 뒷날 무죄로 판명된 것을 보면 내란음모 사건은 무결점 수사를 요구한다. 민청학련사건,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사건 등 많은 공안사건이 민주화 이후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1966년 김두한 의원 내란음모 사건은 국회결의로 장본인이 풀려난 데 이어 같은해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정권이 내란죄를 남용한 대표적 사례다.

민청학련 사건과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이들을 뒤에서 조종해 데모로 국가변란을 기도했다는 것이 2차 민혁당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05년 국정원이 스스로 조작이라고 고백했다. 또한 사형선고를 받고 2년여 옥살이 끝에 풀려난 김대중 등은 1995년 민주화운동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재심을 청구하여 무죄판결과 명예회복을 성취했다.

종북파로 지탄받아온 현직 국회의원이 ‘주범’으로 등장한 내란음모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발표가 국민들을 경악케했다. ‘그럴줄 알았다’는 반응도 있고, 모기 보고 칼을 뽑은(見蛟拔劍)격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공개된 내란음모 지하혁명조직(RO) 회합 녹취록에 대해서는 ‘내란음모 라기 보다는 정신병자들의 부흥회 수준’으로 일축하는 트위터도 있다.

무엇보다 ‘내란음모’죄가 33년만에 적용된 법조항이어서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주범으로 지목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과 구속여부가 이번 내란음모 사건의 첫 관문이니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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