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장 도굴꾼 유적 약탈
이집트 문화재 수난
이탈리아 폼페이
관리부실로 폐허 위기
반구대암각화 주변
42년만의 발굴조사
켜켜이 쌓인 퇴적층서
베일 벗겨줄 단서 기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 이집트에서는 지금 도굴꾼들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시위로 호스니 무바라크 체제가 붕괴된 데 이어 지난 7월 무함마르 무르시 체제마저 붕괴되면서 도굴꾼들이 거침없이 유적지 약탈에 나서고 있다. 굴착기를 동원하는가 하면 심지어 첨단무기로 무장한 괴한들이 정부와 지자체 보물창고와 박물관까지 습격하고 있다.
알려진데로 폼페이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灣) 연안의 고대도시다. 기원 후 79년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도시 전체가 용암과 잿더미에 고스란히 파묻혔다가 1748년에 발굴됐다.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1700년 가까이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고 보존됐기 때문에, 197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다.
하지만 지난 2010년 ‘검투사의 집’이 붕괴됐고, 그 뒤에도 폭우로 건물 3개가 잇따라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프레스코 벽화는 간신히 박물관으로 옮겨져 보존했으나, 비바람에 무방비로 노출된 고대건물의 벽은 붕괴위기에 처해있다. 폼페이 유적의 이 같은 수난은 전세계에서 매년 23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데다 전문관리 인력이 부족한 구조적 위험 속에서 지내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마침내 지난 2월 유럽연합(EU)과 ‘폼페이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복원 프로젝트는 고대 건축물 복원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독일 뮌헨 공대의 연구진이 맡기로 했다. 그 밖에 지리와 환경 자문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팀이, 고고학과 역사적 고증은 이탈리아가 책임지기로 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이 나라 유물 중에는 900년 전에 만들어진 ‘바하르 하삽’이라는 국보급 달력이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선 이렇게 귀한 유물을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과 우리나라 기자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국가기록원 직원은 녹슨 철제 책꽃이에 꽃힌 고서들을 뒤져 국보 ‘바하르 하삽’을 꺼냈다. 이 직원은 900년 전의 귀한 달력에 쌓인 먼지를 맨손으로 툭툭 털더니 한 장씩 넘겼다.
그는 “1년을 13개월로 나눠 계산한 세계유일의 달력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곳엔 양가족에 고대 에티오피아 언어인 ‘게에즈’로 기록된 수백년 넘은 고서가 가득했지만,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없었다. 현장에 동행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등은 워크숍을 열고 고서를 맨손으로 만지면 왜 안 되는지, 유네스코 유산을 어떻게 조사하고 등재하는지 등을 교육했다.
돌로 지은 사원의 돌틈으로 나무의 뿌리가 파고들어 자라 기괴한 형상을 드러내고 있는 캄보디아의 ‘따프롬’은 크메르 왕조의 자야 바르만 7세가 1186년 어머니를 위해 지은 불교 사원이다. 영화 <툼레이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800년이 넘는 세월에 자이언트 팜나무 뿌리가 문어발처럼 건물을 감싸고 있는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 마치 마법에 걸린 사원처럼 보인다.
거대한 나무가 사원을 감싸고 있는데, 이는 폐허가 된 사원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과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돌틈으로 파고들어가 자란 나무 뿌리가 썩어 틈이 생기면서 아까운 유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너진 돌덩이들이 쌓이기 시작해 길을 막고, 회랑 벽과 천장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 이미 손 쓸 수 없는 폐허의 아름다움과 공포가 안타까울 뿐이다.
폼페이 유적지의 위기나 이집트 유적도굴 등과 같은 문화재와 유적의 수난은 우리나라에서도 겪었거나 겪고있는 일들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역사유적과 문화재가 사라지거나 훼손되고 말았다. 맨손으로 국보급 기록유산의 먼지를 털고 있는 에티오피아 국가기록원 직원의 모습은 한때 우리 문화재 종사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난달 30일 개토제(開土祭)와 함께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가 암각화 발견 42년만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오는 12월까지 진행될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암각화 주변에서 어떤 유물과 유적이 또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 다른 암각화가 발견되어 반구대암각화의 베일을 벗겨줄 단서가 될지 기대가 크다.
1950년대만 해도 암각화 주변 대곡천 바닥의 암반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세월과 함께 켜켜이 쌓이고 또 쌓인 물 밑 퇴적층 속에서 잠자고 있을 또 다른 고래와 사냥꾼의 삶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