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중국 옌볜에서 태어나 베이징대(北京大) 동방학부를 졸업한 뒤 이집트 카이로대에서 유학했다. 이후 모로코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평양 외국어대 교수와 아프리카 튀니지대 연구원, 말레이시아 말레이대 교수로 일했다. 어느해 ‘무함마드 깐수’라는 필리핀 국적의 외국인 학자로 우리나라 단국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1996년 어느날엔 돌연 북한의 고정간첩으로 체포돼 주위를 놀라게 했다. 출옥 후 베일을 벗은 올해 일흔 아홉살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사 연구소장의 삶은 파란만장한 만큼 또 글로벌하다. 그는 언어의 천재다. 아랍어 페르시아어 말레이어 일본어 등 10여개 언어를 구사한다. 그가 문명교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한 것은 이런 삶의 내력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형(刑)이 확정된 그는 복역 중이던 서울 구치소에서 1998년 4월부터 편지지 앞 뒷면에 실크로드의 기본개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감옥에선 소지할 수 있는 책이 제한돼 있어 필수적인 사전류를 뺀 참고도서의 차입과 반출을 거듭하며 집필에 전념했다.

그렇게 쓴 원고는 표제어 974개 항목, 원고지 6000장 분량이었다. 이후 표제어를 보강하여 최근 경상북도가 추진한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태어난 결과물이 《실크로드 사전(事典)》이라는 방대한 저작물이다. 실크로드의 역사와 지리 인문 종교 사상 교역 등을 상세하게 풀이한 이 사전은 1907개 표제어와 8015개의 색인으로 구성된 1092쪽 분량의 대작이다.

《실크로드 사전》의 특징은 실크로드 육로의 동쪽 끝을 중국 시안(西安)이 아니라 한반도의 경주로 규정한 것이다. 경주에서 출토된 4세기께 유리제품인 로만글라스가 신라와 로마의 교역 및 문명교류를 보여준 증거라는 것이다. 실크로드를 스물세 차례나 답사한 그가 주장하는 ‘실크로드’의 개념은 중국 시안에서 서역에 이르는 육로만을 의미하는데서 벗어나 인류문명 교역로를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확장한다.

이에 실크로드는 오아시스로, 초원로, 해로 등 3대 간선과 5대 지선이 그물처럼 엮인 범지구적 문명교류의 통로이다. 울산 개운포를 통해 신라 경주에 왔다는 ‘처용설화’의 주인공 처용이 아랍인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그와 동국대학교 사학과 이용범 교수로 역사학계를 놀라게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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