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일회(一期一會), 일본의 다도(茶道)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다. ‘당신과 만나는 이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한번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순간을 귀하게 여기고 지금 할 수 있는 최고로 당신을 맞이하겠습니다’라는 의미로 차를 대접하는 사람의 손님에 대한 마음가짐을 나타낸다. 16세기 일본의 유명한 다도가인 야마노우에 소우지(山上宗二, 1544~1590)가 ‘일 평생 단 한 번의 만남[一期に一度の会]’이라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일기일회는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평생 단 한 번의 만남’이라는 뜻인데 모두 불교와 관련 있는 말이다. ‘일기(一期)’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한 주기를 말하며, ‘일회(一會)’의 ‘회(會)’는 법회와 같이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시간으로 여기서 ‘일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귀한 깨달음의 시간, 깨달음을 주는 이와의 만남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일기일회는 평생의 모든 만남은 내게 큰 배움과 깨달음을 주는 이와 만나는 순간처럼 귀한 것이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법정스님의 법문집을 모은 것이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온 적이 있다.
그 책에서 법정스님은 “한 번 지나가 버린 것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감사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일기일회입니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한 평생 동안 매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귀한 시간들이고, 그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은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평생의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한 것이었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그보다는 죽기 전에 돌아본 생에서 내 일생의 단 한 순간을 꼽으라고 할 때 존재하는 바로 그 시간과 만남이 있다. 어쩌면 ‘일기일회’는 이렇게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평생 단 한 번뿐인 만남, 그 시간’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한편으로 또 다른 시간들이 있다. 바로 ‘일기일회’의 순간이 될 수 있었는데 내가 놓친 순간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작 생의 마지막에 가장 떠오르는 시간들은 이렇게 때늦은 후회로 아쉬움이 남는 순간들일 수도 있다. 일기일회가 될 수 있던 그 시간들을 나의 선택으로 놓아버렸다면 그처럼 아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90년대를 추억하는 영화와 드라마, 음악들이 문화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그 시절에 청춘을 보낸 지금의 3, 40대의 지지를 받으며 나타난 문화현상이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 중 하나이며, 돌이켜보니 일기일회였던 시간들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의 향수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이 순간도 먼 훗날 그러한 시간이 될 수 있을까. 20년 후에 지금 이 순간을 추억하는 영화와 드라마가 나왔을 때 우리는, 그리고 지금의 10대, 20대의 청춘들은 그때도 지금의 이 시간들을 돌아보며 열광할 수 있을까.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을 어떻게 사는가가 다음의 나를 결정합니다. 삶은 인간에게 주어진 길고 어려운,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수행의 길. 매순간 우리는 다음생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라고.
2034년이 열리는 날 아침, 오늘의 2014년이 시작하는 날을 돌이켜보며 그때가 내 인생의 일기일회였다고 그리워할지, 아니면 일기일회가 될 수 있었는데 내가 놓친 순간이라 안타까워할지, 그것은 2014년 1월 3일 바로 오늘을 사는 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