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은 아름다운 대곡천을 중심으로 한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원래는 고대 신라 불교문화의 해상 통로로 더 잘 알려진 역사적인 지역이자 불교문화의 해상통로였다. 신라의 유명한 원광, 자장, 원효대사 등도 울산의 사찰에서 기거하고 활동했다.
528년 불교를 공인한 신라는 535년 처음으로 흥륜사(興輪寺)를 완성하고 불교신앙의 확대와 대외적인 교섭에 주력하게 된다. 육지가 고구려와 백제에 의해 막힌 신라에서 인도와 중국과의 교통은 해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삼국유사(三國遺事)' 탑상(塔像) 황룡사장육(黃龍寺丈六)조에 전하는 인도의 아육왕이 보냈다는 전설적인 삼존상을 모형으로 금동장육존상을 주조해 574년 황룡사 금당에 모셨다는 내용이 주목된다. '… 남쪽에 큰 배 한척이 떠 와서 河曲顯 絲浦(지금의 蔚州 谷浦)에 닿았다. 배를 검사해 보니 글이 있었는데 인도의 아육왕이 황철 1만7,000斤과 황금 3,000分을 모아서 석가삼존상을 주조하려 하다가 이루지 못하여 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면서 인연있는 국토에 가서 장육존상을 이루어 달라고 축원했다 한다. 하곡현의 관리가 이를 문서로서 임금께 아뢰니 왕은 그 고을의 성 동쪽의 넓고 메마른 땅에 東竺寺를 세워 그 삼존상을 모시게 하고 보내온 금과 철은 서울에 수송하여 장육존상을 만드는데…'
기록에 전하는 인도의 아육왕(阿育王, 기원전 273-232)이 보낸 재료를 서울로 수송해 만든 상이 574년 금당에 모셨다는 경주 황룡사 금동장육존상이다. 이 황룡사 장육존상은 13세기 몽고의 침략 때 불에 타 없어졌지만 하곡현 동축사에 모셨던 삼존상은 황룡사로 옮겨지고 몽고난에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현재 황룡사에는 불상이 서 있었던 자연석의 거대한 석조대좌가 남아 있다. 그 유명한 황룡사 장육존상의 모형은 인도 아육왕이 보낸 삼존상이며 이 불상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찰이 진흥왕대(540-576년) 울산에 세운 동축사인 것이다.
현재 동축사의 규모는 알 수 없으며 언제 폐사되었는지도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시대 대사헌과 판서 등 주요관직을 두루 지낸 택당 이식(澤堂 李植, 1584-1647년)의 ‘택당집'에 ‘동축사에서 우스개로 지어 본 시'가 남아 있어 어느 정도의 사세는 짐작된다. '노후한 절간의 스님 서 너분 서로들 합장하며 반갑게 맞아주네. 썰렁한 산 속에 눈이 깊이 또 쌓이고 전각은 높이 솟아 은하까지 잇다을 듯 일주에 법문을 천룡도 와서 듣고 새들도 쌍림찾아 보금자리 택하누나 푸른 바닷가 고즈넉한 이 사찰 운라천망도 너끈히 피할 수 있겠구료'
조선중기 경 이제는 규모도 작아지고 스님도 적은 바닷가 옆 작은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연상되는 싯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축사는 울산에서 제일 처음 건립되었음은 물론 인도 아육왕과 연관되는 점에서 신라인이 주장하는 불교신앙의 정통성을 대변하는 당대 최고의 유서깊은 사찰이었다. 또한 해상왕국 신라의 불교문화의 통로이자 그 시작을 알려 주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현재 울산은 산업과 공단으로 변화된 산업체의 상징으로 변모되어가고 있어 동축사 절터를 찾을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 보인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황룡사 장륙존상을 재현하고자 하고, 이를 중국의 아육왕상과 관련해 그 원형을 찾는 시도를 하고 있다. 황룡사 장육존상의 범본인 울산 동축사에 모셔져 있었던 인도 아육왕이 보낸 그 삼존상이 더욱 궁금한 이유이다. 바닷가 옆 동축사는 지금의 어디쯤에 있었던 사찰일까? 어떤 이는 울산시 중구 반구동 일원으로 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울산공단 근처로 추정하기도 한다.
울산은 많은 사지가 발굴된 바 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지금 발굴하고 있는 영축사지가 있고 이미 발굴이 끝난 장천사지와 간월사지도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 처용설화와 관련된 망해사지를 비롯한 여러 폐사지들이 현재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자장이 부처의 사리를 봉안했던 태화사도 현재는 없어지고 보물 제441호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만이 울산박물관에 남아있다. 발굴과 발굴 결과를 토대로 울산에서의 불교문화 연구는 이제 그 시작점에 와 있다.
이 시점에서 현재 울산대곡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울산 태화강과 만난 불교' 특별전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신라초기의 절터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들이 총망라돼 있으며 파노라마처럼 역사적 실체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중요한 절터와 앞으로 해야 될 미래도 제시하고 있다. 울산도 불교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신라 문화의 원류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반증 같아 기쁘기 그지 없다. 앞으로도 울산지역 불교문화재의 원형 찾기와 연구를 위해 노력하는 울산시와 박물관의 역할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