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우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장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2월은 변화무쌍한 날씨에 겨울이 머무름을 느끼면서도 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참 멋진 달이다. 봄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과 기대감은 자연스럽게 여행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한다.
울산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단연 국보 147호 천전리 각석이다. 학창시절 우연하게 들렀던 이 곳에서 신비와 현실이 교차하는 충격적인 아름다움을 느꼈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그 옛날 왕들의 놀이장소였을지도 모르는 넓직한 바위 위에 앉아 귀로는 물소리를 들으며 그 앞으로 펼쳐지는 경치를 감상하노라면 이것이 신선놀음이라는 착각까지 들 정도이다. 더불어 바로 옆 고개만 돌리면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의 암각화는 모름지기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시대의 문양으로 이어지고 이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조각한 신라시대의 그림과 역사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선사시대의 겹마름모꼴, 동심원이 무엇을 의미했을까 라는 무한한 상상에, 그 밑에는 사람과 더불어 배, 등의 암각이 새겨져 있으니 천년에 이르는 울산의 역사와 문화가 그 안에 오롯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천전리 각석의 하단부에는 책처럼 펼쳐진 모습에 명문이 새겨져있는데, 을사명(원명原銘, 525년)과 기미명(추명追銘, 539년)이다. 즉 을사명에는 법흥왕의 동생인 사부지갈문왕이 여동생 어사추여랑과 이 계곡에 놀러 왔다가 바위에 글자를 새기고 서석곡(書石谷) 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내용이다. 기미명에는 이로부터 8년이 지난 해에 갈문왕의 비 지몰시혜비가 삼촌이자 남편이었던 사부지갈문왕을 그리워하여 어머니인 법흥왕비 부걸지비와 아들을 데리고 이전 그들이 다녀갔던 그 계곡에 왔다는 내용이 쓰여져 있다. 아들인 심맥부지는 사부지갈문왕의 아들이자, 법흥왕 다음 왕인 진흥왕(540~576년 재위)이다. 진흥왕은 7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해 태후가 섭정을 하게 되는데, 이 곳에 온 지몰시혜비(지소부인)가 그 태후일 가능성이 높다. 진흥왕이 이곳에 온 해는 즉위 직전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신라왕으로서의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즉, 이 곳은 사부지갈문왕과 관련해 매우 유명한 장소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하는데 누군가는 사부지갈문왕과 어사추여랑의 로맨스로 비약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법흥왕의 딸로서 어머니인 법흥왕비와 자신의 아들이자 다음 왕위계승자인 진흥왕을 대동하고 다녀간 갈문왕비의 이야기를 떠 올리면 아닐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 명문 옆의 용, 배, 말 등의 그림들은 이 왕실 가족과 관련된 그림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림 속 배를 떼어내면 신라의 배가 그대로 움직이고, 걸어가는 사람을 떼어 내면 그대로 신라인들이 된다. 이외에도 신라 화랑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어 여러 사람들이 이 곳을 다녀갔음을 증명하고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새겨졌음이 분명해진다.
그런데 신라시대에 조각된 그림과 명문은 이전에 있었던 선사시대의 암각화들을 지우고 그 위에 새긴 것으로 지금으로 치면 문화재 훼손으로 인한 문화재보호법 위반죄가 적용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죄명이다. 이는 2011년 천전리 각석에 수학 여행을 온 어느 고등학생이 이곳에 친구의 이름을 낙서해 뉴스에 크게 방영되었던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역사적 기록과 낙서의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울산 태화강의 젖줄인 대곡천이 휘감아 돌아가는 좋은 경치에 쉴 수 있는 크고 넓적한 바위, 선사시대만이 아니라 신라 왕실 문화를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천전리 각석을 가진 울산은 참으로 조상의 복이 많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약 천년동안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도 없는 신라의 암각화는 물론 신라의 왕들이 직접 방문했다는 사실을 명문으로까지 새겨 놓았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왕이 다녀갔다는 설화만으로도 명승지로서 관광붐을 일으키는 곳이 매우 많다. 심지어는 확실하지 않은 설화만으로도 새로운 이야기들을 삽입해 만들어 내는 일도 허다하다. 그런데 천전리각석은 선사시대 암각화로부터 역사시대 기록이 있는 유일한 곳이며, 엄연한 팩트가 남아 있고 그 역사 속 인물들은 정사에서 만이 아니라 국보 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같이 다른 문화재에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 시민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반구대 암각화는 알아도 천전리 각석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1970년 12월 24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인 천전리 각석과 서석, 사부지갈문왕이 이 아름다운 계곡이 이름조차 없기에 서석곡이라고 이름을 붙혔다는 바로 그 곳, 6살의 어린 진흥왕이 왕위 계승 전 다녀 간 그 곳. 참으로 놀라운 곳이 아닌가?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올라가 있는 천전리 각석,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날을 기대하며 이 봄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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