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간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실타래처럼 엉켜 풀지 못할 것 같은 형세가 계속되고 있다. 독도와 관련된 영토 문제, 동해 표기, 위안부 문제는 이제 도를 넘어 산으로 가고 있는 형국이며, 일본내 인사들의 3·1절 망언은 이제 글로 옮기기도 불편할 정도이다. 여기에 불미스러운 경로를 통해 한국에 들어 온 대마도의 통일신라시대 금동보살입상과 왜구의 침략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맞물린 1330년 제작의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두 구 역시 앞으로의 전개는 예측 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작년에 터진 대마도 불상 사건은 가뜩이나 어려운 두 나라의 상황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할 때도 있었던 친밀한 두 나라가 갑자기 왜 이런 상황으로 까지 치닫고 있는지 혼란스럽기 조차하다.
오랜 역사 속에서 한국과 일본, 함께 불리는 것만으로도 무엇인지 모르는 욱한 감정이 섞여 배어 나오게 되는 두 나라. 이렇게 한쪽으로만 치닫고 있는 이 상황이 두 나라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는데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미래에는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야만 되는데는 공통된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잠시 한국과 프랑스와의 관계가 그 대답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이 조약이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들이 여러 경로로 프랑스로 건너가게 된 배경이 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는 강화도의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다량의 왕실 의궤를 약탈하였으며, 2001년 9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 즉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旨心體要節)도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1993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휘경원원소도감의궤> 2권의 책을 들고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는 큰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고속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로부터 약 20년 후인 2011년 프랑스로부터 외규장각반환 의궤가 임대형식으로 우리나라에 돌아오게 된 시초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약탈문화재라는 점을 인정한 프랑스 법원의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에 좋은 상태로 의궤를 잘 보관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이도 있었고 우리 것을 이제야 돌려준 것에 대한 분노 혹은 임대 형식으로 준 점에 대한 서운함을 숨기지 않은 분도 많았다.
그러나 미테랑대통령의 약속과 다르게 한국을 다녀간 20년 후에야 비로소 의궤를 한국으로 보낸 이유라든지, 병인양요와 관련해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가져 간 것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 사람은 극소수였던 것 같다. 일단 보내 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음은 물론 이에 대한 특별전이 열리고 개막 한달도 안돼 10만인파가 몰렸고 줄을 서서 보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하였다. 한국인의 따뜻하고 진솔한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일화인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기 보다는 현재에 감사하고 용서에 후한 통 큰 대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5년 갱신 영구임대>라는 형식으로 들어 온 의궤의 영구 소장 까지는 앞으로 두 나라 사이의 풀어내야 할 많은 불씨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한국과 프랑스는 의궤 반환으로 자연스럽고 좋은 관계로 현재 발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며 가치, 문화재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역시 이 난국을 문화의 힘을 이용해서 풀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날 일본과 한국의 정상이 웃으며 만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일본이 대마도 관음사에 있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두 나라 미래의 상징으로 원래의 소장처인 충청남도 서산 부석사에 영구임대 방식으로 혹은 영원히 돌려주기로 했다는 일본 정상의 발표가 신문 1면에 실리는 상상도 해 본다. 반환 후 불상 특별전이 열린다면 아마도 우리 한국인들은 그 동안 해 온 일본 인사들의 망언들을 조금은 용서하지 않을까? 문화의 힘을 믿으며, 상상이 실제가 되는 그 날이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