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득 UNIST 교수·도시환경공학부

언제부터인지 논문표절 검증은 교수 출신뿐만 아니라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고위공직 후보자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이러한 절차는 학생들과 연구자들에게 표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연구윤리 확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언론과 정치인이 주축이 된 표절 검증은 연구윤리 확립 차원이 아닌 일종의 신상털기식으로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앞으로 어떤 연구자가 장관 후보가 되더라도, 설령 표절 사실이 없더라도, 야당(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에서 표절 문제를 제기할 것이 확실하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표절은 “다른 사람이 창작한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도용하여 사용하여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발표하는 것”이다. 이처럼 표절의 정의는 간단하지만, 실제 연구현장에서는 복잡하게 적용될 수 있다. 여기에 자기표절(self plagiarism) 개념까지 더해지면, 연구윤리위원회 소집 등 복잡한 검증절차가 필요하다. 표절 여부의 판정은 학문 분야별로도 다를 수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 이공계에서는 표절이 아니라고 하지만, 인문사회계에서는 표절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표절에 대한 판정과 언론보도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그동안 표절에 관한 많은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잘못된 언론보도로 정직한 연구자가 한순간에 비윤리적 연구자로 매도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공계 교수 누구라도 지금 당장 인사청문회 대상자가 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 신문기사가 날 수 있다. “학술대회 발표초록과 학술지 논문의 상당수가 일치”, “연구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학술지에 게재”, “제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여러 개로 쪼개서 학술지에 게재”, “제자 논문에 공저자로 무임승차”, “제자의 연구결과로 정부 연구과제 수주해”.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에서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학술활동을 했던 사람이라면 헛웃음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와 비슷한 내용의 표절 시비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일반인이나 인문사회계 출신이 이런 내용의 신문기사를 읽는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해당 교수를 강하게 비난할 것이다.

언론보도만 접하고 논문표절 당사자를 비판하기에 앞서, 다양한 연구활동 과정에서 어떤 경우가 표절에 해당하는지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한국연구재단 지정 연구윤리정보센터(http://www.cre.or.kr) 자료와 게시글 참조). 연구자는 논문작성 전에 이에 대해 반드시 숙지해야 하며, 관련 보도를 준비하는 언론인 역시 이를 숙지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예들은 최소한 이공계에서는 표절로 간주하지 않으며 연구윤리에도 저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도교수는 학생에게 연구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학생과 연구결과에 대해 끊임없이 상의하며, 학생이 작성한 학회초록, 학술지 논문, 학위논문을 검토하고 보완을 지시한다. 필요하면 이들 연구성과물을 직접 수정하는 등 지도학생의 모든 연구활동에 관여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학생은 논문의 주저자가 되고 지도교수는 책임저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즉, 학술지 논문에 지도교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은 학생의 연구결과를 가로채는 것이 아닌, 지도교수로서의 당연한 권리인 셈이다. 학생이 작성한 논문에 지도교수가 단독저자로 표시되는 것은 표절문제라기보다는 부당 저자에 관한 문제이다.
대학원생의 연구에는 연구과제 수행, 학회 발표, 학술지 논문 게재, 석박사 학위논문 작성의 순환고리가 있으며, 이 과정에서 동일한 자료와 문장을 사용하더라도 일반적으로 표절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박사학위 과정 중에 매년 독립적인 내용으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이를 취합해서 박사학위 논문으로 작성하는 것은 이공계에서는 매우 일반적이고 권장된다. 연구과제 보고서 역시, 필요에 따라 결과를 정리해서 학술논문으로 게재한다. 보고서는 발주기관을 위해 작성하는 것이지만, 학술논문은 불특정 다수에게 연구성과를 알리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작성 목적 자체가 다르므로 중복 게재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며, 이런 경우에는 본인이 작성한 내용을 재사용해도 자기표절이 아니다. 필요한 경우, 출처를 적절하게 밝히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도교수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한다면 학위논문 관련된 표절문제가 발생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위공직 후보자를 낙마시킬 의도로 논문표절을 검증하는 것이라면 피해자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국연구재단 등의 전문기관을 활용하여 석박사 학위소지 후보자에 대한 공식 검증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요즘 분위기라면 교수 출신 공직후보자 상당수가 논문 표절자로 매도되는데 누가 국가를 위해 공직자로 봉사하고 싶다고 선뜻 나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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