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우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장

보름달을 볼 수 있어 더욱 좋았던 한가위가 지나갔다. 고대 농경사회에 기반을 둔 추석은 가베, 가위, 한가위라고 불리는 우리 나라 최대의 명절이다. 새로 농사지어 수확한 햇곡식을 조상께 올려 제사지내고 노래부르고 춤을 추며 놀았던 오랜 전통을 지닌 고유 명절인 것이다.
추석날 저녁 가까운 산 위에 올라 바라 본 보름달은 실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크기도 하였다. 이번 추석의 보름달은 올해 들어 두 번째로 큰 슈퍼문으로 보통때 보다 약 13퍼센트 더 컸다고 한다. 구름 사이로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는 묘기 넘치는 달을 보면서 마치 한 폭의 추상화를 보는 듯 난해하기도 하고, 모가 없이 둥글어 무엇인가 꽉 찬 풍요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름답기도 하지만 처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비롭기까지 한 여러 생각을 하게 한 보름달이었던 것 같다. 이런 점 때문에 보름달에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고 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처럼 우리 나라의 한가위는 보름달로 대변되는데, 태양과 함께 많은 이야기의 소재로 오랫 동안 등장하게 된다. 가장 많이 알려진 내용은 달 속에 산다는 생명체들로서, 태양 속에 산다는 세 개의 발을 가진 까마귀, 삼족오와 더불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까지 많은 그림 속에 표현된 단골소재들이었다. 즉 달 속에 두꺼비나 옥토끼가 산다는 믿음은 고구려 벽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친근한 내용들이다. 실제 달 속에 두꺼비나 옥토끼가 있다는 표현은 중국의 한대부터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신화적 소재로 발전하게 되는데, 중국의 창조신 복희, 여와와 함께 해와 달이 표현되고, 달 안에 두꺼비가 있다는 문헌 기록도 이 때 등장하게 된다. 이외에도 달 속에 전설속의 나무인 계수나무가 있다든지. 불로초, 두꺼비, 노루 같은 많은 동물이나 생명체들이 그림 속에 상상력을 빌어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림 속에 표현된 가장 생생하고 재미있는 보름달은 고려시대의 불화에 그려진 것으로 계수나무 밑에서 떡 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의 모습으로 최고의 작품이다. 실제 토끼가 뒤꿈치를 들고 엉덩이를 올려 방아를 들고 밑으로 내려치는 기세가 마치 ‘쿵더쿵 쿵더쿵’ 소리가 들리는듯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이후 해와 달은 왕권의 상징으로 발전하면서 황제가 입는 12장복의 어깨 좌우에 수로 놓아지거나, 왕의 깃발에도 해와 달을 그리는데 여러 동물 가운데서도 토끼가 그려진 달의 표현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불교미술 속으로도 습합되어 수월관음이나, 십일면관음, 천수관음 그리고 약사여래의 협시보살인 월광보살의 보관에도 토끼가 그려진 보름달이 여러 시대를 거쳐 계속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조상들은 달 속에 계수나무, 두꺼비, 토끼, 불로초, 노루 등이 살고 있다고 믿었고 이를 신성시하였으며. 여러 장르의 미술로 융합되면서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달에 갔다 온 시대에 살고 있고 우주여행이 가능하며 언젠가는 달에도 갈 수 있는 과학이 매우 발달한 첨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군다나 달 속에 있는 이 물체들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으며, 우리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방아 찧는 토끼는 실제는 달 표면의 구덩이(crater)가 만들어 낸 이미지임은 어른은 물론 어린아이들도 다 안다. 이들 구덩이는 지름이 약 200㎞ 혹은 그 이상 되는 것도 있으며, 달 표면에 매우 많이 흩어져 있거나 종종 서로 겹쳐 있기도 한다고 한다. 큰 구덩이의 대부분은 운석이 빠른 속도로 달 표면과 부딪쳐 생겨난 것이고, 지름이 1㎞이하인 작은 구덩이는 화산폭발로 생겨났을 것이라는 사실 까지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먼 옛날, 이 구덩이들이 달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지구에서 보면 마치 토끼 같기도 하고 두꺼비 같게도 느껴졌었고 이후 전설로 신화로 재창조되었다. 적어도 45년전인, 1969년 7월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1930~2012)이 처음으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디며 ‘고요한 바다'라고 명명하던 그 이전 까지는 말이다. 어린 시절의 꿈처럼 아름답게 남아 있었던 신화가 한 순간에 무너진 순간이었지만 아직도 믿고 싶다. 이번 한가위의 슈퍼문 속에는 계수나무 밑에서 방아 찧는 토끼가 있고 불로초를 입에 문 두꺼비가 있을 것 같다.
이래 저래 현대인들에게는 고대부터 지속되어 온 신화도 상상력도 추억도 사라져가고 있다. 보름달 속 신화도 생명체들도 마찬가지로 퇴색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이 많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반대로 상상이 실제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과학이 앗아 간 신화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1982년 개봉한 스티븐 스틸버그감독의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E.T가 그랬듯이. 새롭게 부활할 보름달 속 생명체들을 기대하며, 새로운 신화를 그리워 하며,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동요가 입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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