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그동안 전통옹기 제작기술만 강조돼 온 울산에 뛰어난 도자기 기술까지 더해져 새로운 도예역사를 쓸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대곡박물관은 지난달 30일부터 열고 있는 특별전 ‘울산, 청자·분청사기 그리고 백자를 굽다’를 통해 “국보 제172호 ‘진양군 영인 정씨(晋陽郡 令人 鄭氏)묘 출토유물’ 중 묘지(墓誌)의 내용으로 볼 때 조선전기 언양현의 백자생산기술이 매우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묘지(墓誌)는 경남 거창군 북상면에 있는 진양군 영인 정씨의 무덤에서 출토된 백자로, 무덤 주인인 영인 정씨의 가계·가족상황·사망일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크기는 가로 20.4cm, 세로 36.6cm로 현재 서울 리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전문가들은 고려 백자의 계통을 이어받은 특이한 모양과 바탕흙으로 보아, 경상도 지방의 백자가마에서 제작되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묘지(墓誌)에 따르면, 무덤 주인인 영인 정씨는 김효로와 혼인하여, 2남 4녀를 낳았는데, 1466년(세조12) 아들인 언양현감(彦陽縣監) 윤(潤)을 따라 언양에 와 있다가 병을 얻어, 그해 11월 21일 언양에서 사망했고, 언양에서 장사지냈다.
이 같은 내용으로 유추해 보면, 묘지는 언양현에서 제작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양현의 여러 곳에 가마가 있었기에, 언양현감이었던 김 윤은 관할 고을의 가마에 묘지를 주문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인근인 천황산의 봉우리 중 평평한 고원지대에 백자 가마터 5∼6기(울주 천황산 요지·사적 제129호)가 있다.
또 2001~2002년 대곡댐 건설 중에 발굴된 울주군 언양읍 천전리 고지평 분청사기 가마터에서는 명문이 있는 분청사기가 여러 점 출토돼 공납자기를 생산했음을 확인했으며, 천전리 압골 청자 가마터가 2003년에, 직동리 분청사기 가마터가 2004년 발굴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언양현에 속했던 태기리와 하잠리에서도 가마터가 발견됐다.
대곡박물관 신형석 관장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 백자묘지는 언양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오늘날 국보로 지정된 ‘명품’ 묘지를 구웠을 정도라면, 조선 전기 언양현의 백자생산기술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가였던 고 신정희 선생의 대를 잇고 있는 사기장 신한균씨도 “울산은 알고 보면 옹기보다 도자기와 더 깊은 인연을 가진 도시다. 가마터가 산꼭대기에 있는 경우는 드문데 울산(천황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도자기 가마터가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며 울산도자기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강조했다.
한편 묘지내용에서 언양현감을 역임한 김 윤에 관한 기록도 주목을 끈다.
현재 「울산선생안」 발간을 준비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박채은씨는 “조선후기 언양현감에 대한 기록은 「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 많으나 조선전기 언양현감에 대한 기록은 처음 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