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옥길 예학자·서예가

 ‘아리랑’에 대한 어원은 여러가지로 전해지고 있으나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배달민족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다. 그리해 ‘아리고 쓰리다’로 생각 된다.
밀양 고을 사람들이 김종직을 생각하기를 조선에 나타난 공자로 여겼다. 김종직 자신도 공자 학도가 되리라고 다짐하고 몸과 마음을 닦아 나갔다. 김종직 역시 공자처럼 무첩군자(無妾君子)군자였다. 이렇게도 존경했던 김종직을 못된 놈 유자광이 대역 죄인으로 조작해서 무덤을 파 해쳐지게 했으니, 밀양고을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밀양 고을 사람들이 흘렸던 눈물 속에서 겨레노래가 나올 수가 있다. 점필재선생이 대역 죄인으로 몰리게 되는 억울함에서 어찌 노래가 없을 소냐, 여기에 대한 답이 <밀양아리랑>이었다. 나는 짐계 려증동 선생님의<밀양아리랑 노래 발생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섣달 꽃본듯이 날쫌보소 아리 당다궁 쓰리 당다궁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소’

‘정든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아리당다궁 쓰리 당다궁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소’
위 노래가 원형에 가까운 ‘밀양아리랑’이었다. ‘아리 당다궁’을 박남표(1894~1939)가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밀양 아리랑에 나오는 시작 말이 ‘나를 조금 보아 달라’고 하는 것이다. ‘나를 조금 보소’를 ‘날 좀 보소’로 말한 것이다.

그다음에 나오는 말이 ‘동지섣달 꽃본 듯이 날 좀 보소’로 된다. 동지섣달에는 눈이 온다. 눈이 오는 동지섣달에는 꽃이 없다. 동지섣달에는 꽃이 있다고 하면 이것은 아주 귀한 것이다. 아주 귀한 사람을 만났다고 치고 ‘나를 보아 달라’고 한 것이다. 억울한 사람이 말하는 애원이었다.
다음에 나오는 말이 ‘아리당다궁 쓰리당다궁 아라리가 났네’로 된다. ‘아리’는 아리(傷)이고, 쓰리(辛)이다. 손이 아리기(手傷)으로 되고, 창자가 쓰리기로(腸辛)로 되는 것이다. ‘당다궁’은 ‘닥궁 닥궁’으로 되는 심장(心腸)소리로 들린다. ‘아라리가 났네’라는 말에서 ‘아라리’는 앓음으로 들린다. ‘아라리’가 억울한 원혼으로 되는 것 같다. 밀양 사람에게 아라리가 생기면 밀양 고을이 해롭게 되는 셈 것인데, ‘밀양 사람에게 아라리가 났네’로 된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말이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로 된다. 억울한 원혼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원혼이 넘어가지 못하면 그 원혼이 떠돌아다니게 된다. 원혼이 밀양고을에 떠돌아다니면 밀양고을 사람들이 화를 입게 된다. 죽어서는 모두가 아리랑고개를 넘어가게 되는 것인데, 억울한 원혼이 생기면 아리랑고개를 넘어 가지 못하게 된다. 넘어가지 못하니 자기 고을 하늘에 떠돌아다니게 된다고 믿는 것이 조선 사람 단족(檀族)이었다. 이렇게 해서 노래 1절이 마치게 되었다.
2절은 ‘정든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로 시작한다. 김종직이 말하는 정든 님은 ‘성종임금’으로 된다. 김종직은 성종임금을 가르쳤던 스승이었다. “전하겨옵셔 밀양고을에 오신다고 하더라도 臣김종직은 몸이 난도질 되었으니, 나가서 뵈옵고 인사를 올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울면서 여쭙는 것이었다.

다음에 나오는 말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빵긋’으로 되었다. 신하가 임금에게 비유되기는 언제나 여인(女人)으로 된다. 부엌일을 할 때 치마위에 덧쳐 입는 희고 짤막한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말한다. ‘행주치마를 입에 물고 방긋 할 뿐, 옷이 찢어져서 나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로 된다. 이 뒤는 1절 나왔던 그대로여서 반복으로 되었다.
밀양고을 사람들이 점필재선생이 지닌 억울한 원혼을 달래어서 저승으로 넘어 가도록 발원해 ‘점필재선생을 존모하는 마음을 다하는 표현’이 그 하나였고, ‘밀양고을사람들이 화를 입지 않도록 바라는 것’이 그 하나였다. 자칫 잘못하면 밀양고을 이름이 없어질지 모르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밀양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면 노래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이런 노래를 민요라고 한다.

고을에 대인군자가 나오면 그 영광을 고을 사람이 함께 나누어 가지게 된다. 고을 사람에서 패륜아가 나오거나 역적이 나오면 고을 이름을 없애버리기도 한다. 고을 사람 모두가 함께 고통을 받도록 되어 있다. 나라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 훗날 정종시대에 안의(安義)고을에 아비를 죽인 패륜놈이 나와서 고을을 없애 버렸다. 북쪽은 거창군으로 붙이고, 남쪽은 함양군으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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