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자극하는 감정과 신(神)에 대한 감정이 심리학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의 『돈에 대한 성찰』에 나오는 얘기다. 심리적 안정과 조화, 평온과 기쁨을 주는 대상으로 신과 돈의 표상을 함께 사유한 것이 흥미롭다. 신을 찾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돈을 많이 벌고 재산을 축적하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아 불안에서 벗어나려 고 한다. 그래서 검은 돈, 불투명한 돈, 떳떳하지 못한 과거와 지저분한 흔적 때문에 ‘세탁’을 해야할 지경의 ‘구린 돈’도 마다하지 않는다.

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한장 한장 다리미로 펴는 사람도 있다지만, 다림질을 하든, 무늬를 맞추든 돈 자체를 소중히 다루는 과정에서 돈에 대한 참가치를 얻는다면 뜻밖의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조건 많으면 좋은, 질보다 양, 욕망의 수단으로만 돈의 가치가 매겨진다면 돈의 수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 돈을 찍어내는 묘안을 가르쳐 주자 황제가 마구 찍어 사방에 뿌려 모든 이들을 즐겁게 했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나오는 얘기다. 미국이 지난 몇 년간 찍어낸 돈은 3조8,000억 달러나 된다. 독일의 국민 총생산 규모를 넘는 액수다. 이 돈으로 금융자산의 가격을 떠받쳐주니 모두가 즐거워 한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사람은 부유하게 된다.” 구약(舊約)성경에서는 돈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재물을 신뢰해서는 안된다”며 황금만능주의를 경계한다. 신약(新約)성경에서는 더 강한 톤으로 배금(拜金)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구절이 여럿 보인다. “돈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돈이 우리 인생의 통치자가 돼 하느님의 역할을 빼앗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느님은 돈을 신으로 여기는 우상숭배를 정죄하셨다”는 구절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 협동조합 회원들과 가진 미사에서 “돈을 숭배하면 돈이 사람의 선택을 결정하게 되고 결국은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특히 “돈은 악마의 배설물(the evil’s dung)”이라며 돈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요즘 떠들썩한 ‘갑의 횡포’도 돈의 위력과 무관치 않다. 돈이 요물로 만든 사람들, 사람들이 요물로 만든 돈, 교황의 일갈은 ‘돈의 노예’가 되고만 ‘갑’들을 꾸짖고 있는것 같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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