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틴은 평등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안된 사형기구였다. 그러나 이 도구는 모든 인간에게 고통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자는 본래 의도와 달리 치열한 정파 경쟁이 전개된 프랑스혁명기에서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우리는 위 혁명기 동안 ‘오늘 나의 적'을 기요틴에 올려놓은 자가 내일의 단두대에 올라가는 일들이 반복된 사실을 기억한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사에도 흡사한 일을 벌어지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인사청문회다. 인사청문회로 만신창이가 된 후보가 결국 백기를 들고 낙마하는 과정을 볼 때 기요틴을 연상하게 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최고의 인재를 적재적소의 기관에 임명하기 위해 엄격한 검증시스템을 거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해 도입된 인사청문회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쓰이기보다는 진영논리의 사형장으로 전락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질문자인 국회의원들은 청문회에 입장하는 후보자들에게 도덕성, 리더십, 전문성, 양심 등의 문제를 던지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질문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후보자의 도덕성을 검증한다는 구실로 그의 과거를 들추어 내는 인신공격성 질문이 다수이다. 때로 인사청문회는 후보자가 과거에 술자리에서 무심코 했던 말, 가족들의 생활상 등과 같은 개인으로서 지켜주어야 할 프라이버시를 때로는 침해하기도 하고, 그가 가진 역사관까지 검증의 도마에 오르내리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후보자의 위장전입, 군입대면제, 논문표절여부, 다운계약체결 등과 같은 공직자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법적, 혹은 도덕적 의무와 관련된 문제들을 지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의아하게 여기는 것은 인물에 대하여 다각도로 검증하기 위한 목적과는 달리 인신공격을 위한 인사청문회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게 된다. 왜 인사를 검증하기 위해 일부 편향된 도덕성의 논리만을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한 후보를 검증하는 장소에서 대부분 여당은 그를 변호하고 야당은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하는 것일까? 지난 정권에서 했던 인사청문회에서 어떤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국회의원이 다음 정권에서는 왜 큰 문제로 부각시켜야만 하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왜 언론사는 국회인사청문회가 개최되기 전부터 그 인물의 과거행적과 언행들을 파헤치는데 몰두하고 이를 보도하는데 혈안이 되어 임명권자의 의지를 꺽는데 집중하는 것일까?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진영논리에서 찾을 수 있다. 진영논리에 따라 인사청문회가 작동하는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이중잣대가 적용될 것이며 ‘상대 진영에 대한 비판은 나를 이롭게 하고, 동일 진영의 내부 비판은 상대 진영을 이롭게 한다'는 고정관념에 고착되고 만다. 진영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인사청문회는 후보에 대한 기요틴의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헌법은 인사권을 대통령에게 위임하고 있는 반면 국회법에 규정된 인사청문회는 인사권을 좌우하는 어떤 구속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 한국의 정치권에서 전개되고 있는 기요틴과 같은 인사청문회가 본질을 왜곡한다면 하위법령이 헌법에 군림하는 위헌적 행태를 방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왜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국민이 그에게 인사권을 위임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감정을 자극시켜 단순 의혹제기를 통한 인사검증절차를 촉발시키는 진영논리로 윤색된 정치권과 언론의 인사청문회 개입은 지양되어야 타당하다.
인사청문회의 주 목적은 후보의 도덕성 검증(그것도 주관적 도덕이 아닌 객관적인 도덕)만이 아니라 그가 가진 전문성을 시험대에 올려보기 위한 절차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 한가지 경고하고 싶은 점이 있다. 인사청문회의 검증주체가 언젠가는 검증객체가 되어 언젠가는 진영논리에 입각한 왜곡된 검증을 받게될 지도 모른다. 마치 기요틴처럼. 끝으로 인사청문회의 본의로 돌아가라는 우리의 충고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