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혜진 울산 중구청 창조도시기획단장

얼마 전 아주 흥미로운 인터넷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독박(讀博)’이라는 단어를 필두로 한 육아에 관한 연재였다. 육아휴직 중인 이 여기자는 친정이나 시댁 등 보조 양육자가 전혀 없이 혼자 육아를 ‘뒤집어 썼다’는 의미에서 ‘독박육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이 연재 기사를 재미있게 구독한 후로 필자는 나를 비롯한 주변 상황에 걸핏하면 ‘독박’이라는 단어를 접두어로 붙이는 버릇을 가지게 됐다. 가령 밀려드는 업무에 혼자 사무실 불을 밝히고 있는 직원들에게는 ‘독박야근’이라 인사하게 됐고, 살림을 할 줄 모르는 며느리 때문에 매번 제사를 혼자 치러야 하는 우리 시어머니께는 ‘독박제사’를 지낸다고 하는 등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독박이라는 단어를 남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담당하고 있는 ‘도시재생’ 업무에는 독박이라는 단어를 어디에도 붙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도시재생은 기존에 지자체 또는 도시개발업자,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계획하고 추진한 하향식(top-down) 도시개발사업과는 달리 주민이 도시재생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지자체는 그 사업을 입안하는 상향식(Bottom-up) 도시개발사업으로 주민공동체에 의한, 공동체를 위한 이상향적 사업을 통해 그 지역에 일어나는 모든 것(물리적 도시기반시설에서부터 도시에서 일어나는 행위까지)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똑같이 져야한다는 사회구조의 新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이미 영국 또는 일본 등에서는 정착화된 이 신패러다임이 우리나라 실정에 정착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은 당연하지만, 작년 ‘도시재생선도지역(국토교통부 주관)'에 쏟아진 지대한 관심을 보면 우리가 생각한 시간보다 더 짧은 시기 안에 도시재생이라는 시스템이 정착될 것이라 예상 할 수 있다. 
필자가 대구에서 근무할 때 평소 존경하는 모 도시국장님께 한번은 왜 국장님께서 제안한 국·시비 공모사업은 모두 선정이 되냐고 여쭤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대답은 아직도 여전히 내 인생의 지침이 되고 있다. 

국장님은 대뜸 100% 효과를 발휘하는 인디언 기우제를 말씀해주셨다.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리고 마는 신통력의 비밀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곧 이 말은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는 제사장의 능력은 ‘끈질긴 인내'인 것이다. 아주 명쾌하고도 정직한 결론을 말씀해 주신 국장님은 될 때까지 하다 보니 하나씩 수확을 얻을 뿐 이라는 말씀에 그동안 얼마나 지속적으로 두드리고 기다림을 반복하는 제사장처럼 맘 고생하셨는지 헤아릴 수 있었던 훌륭한 대답이였다.

경상도말로 삐까뻔쩍한 사업계획서는 그야말로 일 잘하는 업자한테 잘 맡기면 지금이라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야말로 계획서를 쓰는 업자와 일을 맡기는 공무원이 독박을 써야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입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제 모든 도시계획, 도시개발사업의 패러다임이 될 도시재생은 그야말로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가뭄에 콩나듯 두드리고 기다리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한다. 

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한국 산업발전의 모태였던 울산 중구는 도시쇠퇴화를 극복하기 위해 도시재생사업을 준비하면서 전국의 유명하다는 도시재생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항상 전문가들은 주민사업만 봐서는 부산, 대구보다 더 많은 업적을 가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홍보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작년 도시재생 선도지역 공모에서 최종까지 갔다가 선정되지 못한 이유가 울산이 부자도시라는 선입견, 울산시의 전담조직 부재, 울산에 지명도 있는 도시재생전문가가 없어서 등의 이유가 거론됐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일부사유가 될지언정, 진정한 원인은 되지 못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원인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더 지내지 않았기 때문 일 것이다.

올해도 울산 중구는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하는 도시재생활성화지역 공모에 사업구상서를 제출했다. 또 미련할 정도로 기우제를 죽어라고 지내야 할지, 아니면 정말 단비가 내려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지금 이 한순간 한순간을 기우제를 지내는 정성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모든 건 다 기록돼 진다. 학연과 지연에 기댄 막연한 사업성과, 돈으로 화려하게 포장된 사업계획서 보다는 미련할 정도로 기우제를 지내는 정성이 인정받는 것이야 말로 도시재생사업의 승패라 감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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