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길 주필

삼국유사의 ‘단군신화’ 부분에는 ‘환웅이 홍익인간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와 백성의 생명과 병을 맡았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병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병명에는 그 병을 보는 인간의 시각과 병에 대한 이해, 의학 발달 수준이 함께 들어있다.

콜레라가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기록은 1821년(순조 21년) 처음 등장했다. 콜레라에 대한 저항력이 없었던 조선사람 수십만명이 첫 유행에 목숨을 잃었다. 판소리 ‘변강쇠가(歌)’는 ‘(시체의) 독한 내가 코 찌르니, 눈뜬 식구들은… 다 죽는다’라는 표현으로 가공할 전염력을 기록했다. 괴질(怪疾)이라는 이름은 정체가 파악되지 않은 질병이라는 뜻으로 그때 얻었다. ‘괴질’이라는 명칭은 질병에 대한 무지의 고백이자 공포의 표현이었다.

중국을 통해 들어온 콜레라는 이듬해 일본으로 전파됐다. 일본은 이 병을 ‘호열랄(虎列剌)이라 쓰고 ‘고레라’로 읽었다. 병은 조선보다 늦게 앓았지만 병의 정체가 콜레라균이라는 사실은 일본이 먼저 파악했다. ‘호열랄’은 개항 후 우리에게도 전파됐다. 따라서 ‘호열랄’이라는 병명에는 조선의 근대화가 일본을 통해 이루어졌던 역사를 반영하는 용어라는 의미까지 더해준다.
일본 병명 호열랄은 조선에선 호열자(虎列刺)로 바뀌었다. ‘호열랄’은 1880년대 한성순보에 자주 등장했는데 인쇄 상태가 좋지 않아 랄(剌)인지 자(刺)자인지 헷갈렸다. 어떤 사물에 ‘~자’를 붙이는게 우리의 언어 습관이다 보니 1890년대 독립신문에는 어느새 ‘호열자’로 바뀌어 쓰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는 위생을 개인적인 ‘섭생’의 문제로 간주하고 건강증진법을 소개했다. 그러나 김옥균이 1882년 낸 ‘치도약론’에는 위생을 보는 관점이 개인의 섭생에서 국익으로 바뀌었다. 김옥균은 “전염병으로 인구가 늘지 않아 빨리 부강을 이룩하기 어려울 것”, “시궁창이 되어 악취 나는 도로는 외국의 풍자를 받기에 충분하다”며 조선사회의 낙후한 위생 수준을 미약한 국력과 문명적 후진성과 같은 개념으로 인식했다.

유길준은 더 나아가 ‘서유견문’에서 ‘국가가 강력한 법이나 행정력을 동원해 개인의 보건과 위생에 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 근거로 외국에서는 사법경찰 외에 행정경찰을 두고 있는데, 행정경찰은 전염병 예방과 소독, 종두, 식품관리, 도살장과 화장터의 위생관리 등 국민건강을 지키고 감독하는 기능을 한다고 소개했다.
바이러스는 전쟁, 기아, 세균 못지않게 인류를 괴롭혀 왔다. 1918~19년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번진 ‘스페인 독감’은 2,500만~5,000만명을 희생시켰다. 당시 ‘무오년(戊午年) 독감’으로 불린 우리나라에서도 약 14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인류는 백신과 항바이러스제 개발로 바이러스의 번식에 맞서왔지만 박멸시킨 것은 천연두 바이러스 뿐이다. 몸속에서 수십 년을 조용히 버티고, 바람을 타고 국경을 넘나든다니 ‘정복’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들어 사라졌다 싶었던 후진국형 감염병들이 다시 출현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 감염병들의 재등장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새로운 감염병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2002년 중증급성호흡증후군(SARS), 2009년 신종플루, 2012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2014년 에볼라바이러스 등이 그것이다.

환경오염 등으로 기존 바이러스 등이 변화하면서 기존 치료법이나 예방법이 통하지 않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한국은 에볼라 질병 연구를 할 기회를 놓쳤다고 말한다. 
미국의 타임지는 의료진이 맞서 싸워야 할 것은 ‘질병(disease)’ 그 자체뿐만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절망(despair)’과 ‘불신(distrust)’을 꼽았다. 질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전염병을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데도 우리 정부는 환자 진료로 한정했다. 소수의료진을 파견하다 보니 역학적 대책 마련이나 백신 연구의 기회를 놓쳤다는 얘기다.

‘중동감기’, 메르스(MERS)가 발병 한지 한달이 지났다. 메르스 사태는 ‘나사 풀린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초동대응에 실패한 정부, 안이한 병원, 소통 부재,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은 1년전 세월호 참사와 닮은 꼴이다. 애당초 메르스를 막을 정부 시스템은 없었다. 매뉴얼도 없었다. 메르스 1번 환자의 격리부터 실패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유행성 질환은 심리학·수학·의학의 과정을 거쳐 진압된다고도 한다. 초기엔 심리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염은 수학으로 계산되며, 결국 의학이 마무리한다는 의미다. 임기응변식 대책만으로는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를 막을 수 없다. 이번 사태는 ‘기본의 망각’에서 비롯됐다. 정부와 병원, 시민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17세기까지만 해도 ‘병하다’라는 동사는 ‘병을 앓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끔찍한 ‘염병(장티푸스)하다’는 말이 그렇다. 지금도 ‘염병할’이란 표현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21세기의 우리가 17세기의 ‘염병할’ 메르스 사태를 겪고 있으니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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