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상북면 중학생들이 소풍으로 온 고사리분교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당시 상북면 중학생들은 3학년 마지막 소풍으로 1박 2일을 걸어 사자평에 왔다. (상북면 양등마을 송만오 제공) 

재약산 고사리 재배촌에 난민 몰려
1966년 빈 흙집 활용…4년만에 신축
산업화 물결로 30년만에 막내려


사자평 고사리분교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키운 학교였다. 알프스 아이들은 억새 운동장에서 마음 컷 뛰어 놀았고, 한 칸 교실의 책상 위 박카스 병에는 채송화가 꽂혀 있었다. 알프스 소녀 중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 사자평에 들어간 백은실 양은 MIT 공대 만점 졸업생이 되어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알프스 소녀는 “나를 키운 곳은 사자평이었다”고 추억을 이야기 했다.

정식 명칭이 ‘밀양 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였던 고사리분교는 재약산 수미봉 아래의 고사리 재배촌(해발 812m)에 자리 잡고 있어 애칭 고사리분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자평마을은 오래전부터 도자기를 굽던 도예공들의 후세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터이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80호까지 늘어나 일명 사자평 텐트촌이라 불렀다. 자연히 아이들이 늘어나자 1966년 4월 29일 분교를 개교했다. 초창기에는 화전민이 쓰던 빈 흙집을 그대로 이용하다가 개교 2년 만인 1968년에 주민 50여명과 선생님에 의해 1천 평의 학교 부지가 조성되었고, 1970년 현대식 교실과 화장실을 신축했다. 

                    

사자평은 마을과 마을이 십리 간에 뚝뚝 떨어져 있어 등교하는 아이들은 하늘억새길을 걸어 다녔다. 산업화의 물결과 교통의 불편으로 주민들이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결국 30년째인 1996년 3월 1일 사자평분교는 막을 내리고, 1999년 교실은 철거되었다. 총 3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6년 3월 1일 문을 닫았다. 1년 평균 1.2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셈이다. 고사리분교는 폐교가 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한 추억의 학교로 남아있다.

 

     * 이 기고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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