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4년 신불산표범 포획자 이수업씨. 증언에 의하면, 배내골 숯쟁이였던 이수업씨는 배고픔을 달래려 쳤던 올무에 뜻밖에 표범이 걸려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지역 유지들은 기념촬영을 했으나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고 1980년대에 이르러 조악한 합성사진 한 장을 만들어 간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해동·박정택, 신불산 범과 사진촬영
포획 당사자 이수업은 뒤늦게 합성
최정윤, 가지산 범 사냥은 의문 증폭

영남알프스는 억새나라, 표범의 땅이다. 이곳의 맹주는 표범이었다. 범을 신성시하는 주민들은 이 맹주를 ‘찌꿈이’라 부른다. 

영남알프스 주변에는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범과 운문사 경내 벽화의 범 뿐 아니라 반구대 범굴, 운문산 범봉, 신불산 호식바위, 능산 호랑이무덤 등 범과 관련한 여러 흔적들이 있다. 

명포수로 소문이 났던 김해동 포수는 1944년 신불산표범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남겼다. 같은 표범을 두고 양조장을 운영하던 박정택 역시 사진을 찍었다. 1944년 신불산표범을 포획한 장본인 이수업은 뒤늦게나마 합성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16년 후인 1960년에는 최정윤포수가 영남알프스 최후의 표범인 가지산표범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었다. 

신불산을 이고 사는 주민들은 표범 눈을 ‘범불’이라 부른다. 밤이면 범눈에서 흐르는 불빛을 두고 하는 말로 여겨진다. 범을 직접 맞닥뜨린 적이 있는 김 포수는 “범불이 두 개 됐다가 하나 됐다가, 멀리서 보면 푸리고(푸르고) 게잡으면(가까우면) 붉지”라고 목격담을 실감나게 풀어놨다. 

1944년 신불산표범 사진을 찍은 장소는 상북주재소였다. 표범의 얼굴에서 수염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누군가 뽑아 간 것으로 추측된다. 

“범눈썹이 침 같이 뻣뻣해. 몸에 지니면 아귀를 쫓는다고 뽑아 간기라” 

상북주재소 마당 사진 찍는 현장에 함께 했던 상북면 강장회(89세) 씨의 증언이다. 그는 위험한 산을 넘던 소장수들이 액운을 쫓으려고 범 수염을 지니고 다녔다고 말한다. 

사진에 나오는 두 표범의 포획 과정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만 1944년 신불산표범과 사진을 촬영한 김해동 포수의 막내 동생인 김덕동 씨의 증언에 따르면 상북면 배내골에 살던 이수업 씨가 포획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편 1960년 가지산표범은 부산에 거주하는 최정윤 포수가 가지산과 능동산이 갈리는 부처바위 인근에서 포획했다고 전해오나, 실제 포획한 당사자가 나와 그 의문은 증폭한다. 그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최포수는 자신이 사냥한 것으로 꾸민 후 기념 촬영을 한 것이다.

표범은 영물이라 죽은 후에도 인간을 괴롭혔다. 범을 잡은 사람은 실명을 했고, 멀쩡하던 며느리가 미친 범 흉내를 내기도 했다. 또한 수컷을 잃은 암컷 표범은 새끼를 몰고 온 산을 다니며 울부짖는 바람에 동네 주민들은 밤잠을 설치는 일도 있었다고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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