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수 울산쇠부리축제추진위원회 위원장

인류 문명의 획기적 대변혁은 철(鐵)의 발견과 지배로부터 시작되었다.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철의 기술적 지배로 대량 생산체계를 이루었고, 그 후 전기와 통신의 발명으로 2차 산업 혁명의 계기가 됐으며, 핵 이용이 3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져 근대 산업이 형성됐다. 그래서 근대 산업의 기축이 된 것은 바로 철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철이 울산 북구 달천철장에서 생산되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달천 철장은 고대 삼한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철기 문화의 대표적 유적지로서 우리 선조들의 얼과 유구한 철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달천 철장의 중요성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재조명해 보면 신라 선덕대왕 신종은 30여 년에 걸쳐 황동 21톤을 녹여 온갖 정성으로 수 없이 반복하며 용의 울음소리를 재현하겠다는 일념으로 완성해 오늘날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전무후무한 보물이 됐다. 이것은 그 당시(8세기 후반) 철을 기술적으로 지배했다는 사실적 증거이며, 신라의 도읍지 경주 인근에 달천철장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겠는지 의문이 든다. 이를 보고 유럽 사학자들은 한국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은 8세기부터 쇠를 지배했는데 이를 실용적 도구 즉 농기구, 생활도구, 무기 등의 발전에 이용하기보다 종을 만들고 불상을 제조하는 데 전념했다고 한다. 이는 철을 실용적 이용에 전념하였더라면 역사가 많이 달라졌으리라는 아쉬움도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달천철장에서 생산한 철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수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2001년 1월15일 일본 히로시마대학 고고학연구실에서 달천철장은 한국 뿐 아니라 중국, 일본을 포함한 고대 동아시아의 고대국가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철 생산지로, 당시 철 생산과 유통을 고찰할 수 있는 상당히 중요한 유적지이며, 경주 황성동 유적지 유물을 분석한 결과 달천철장의 철이 사용되었고, 일본 열도에서 이와 유사한 철 유물이 발견되고 있으므로 향후 한일 철기 연구의 중요한 유적지로 달천철장을 보존해 달라는 탄원서를 울산시에 제출한 적도 있다. 

그리고 1962년 울산이 공업도시로 지정되면서 울산이 세계적 금속산업 메카 도시로 만들어졌다. 세계도시 중에서 하나의 도시에 세계적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이 함께하는 도시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결코 달천철장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철기 문화유산이 현대에 들어와서 보존의 논리와 개발의 논리가 서로 상충하면서 결국 개발의 논리에 밀려 현재 달천 철장은 형체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주변이 아파트 단지로 형성돼 있다.

우리 선조들의 얼과 철기문화 유적을 계승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문화예술로 승화시키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이 바로 울산쇠부리축제다. 비록 달천철장 현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역사성과 사실성, 울산의 정체성과 특수성, 진정성은 미래 세대에 전승해야 할 가치임은 분명한 사실이며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울산쇠부리축제의 가치는 울산의 어느 축제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시작된 축제가 올해로 어느덧 열두 번째가 되었다. 이번 축제는 아직 현대 과학으로도 복원하지 못한 고대 제철로를 고고학, 역사학, 금속공학의 전문가로 자문위원을 구성, 고대제철로 복원 실험을 하고 있어 정말 흥미진진한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볼 수 있는 첫 단계에 접근하였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쇠부리 기념관 건립을 위해선 고대 제철로 복원과 쇠부리 놀이 민속무형 문화제 등록이 반드시 해결되야 할 과제다. 이러한 과제 해결은 민, 관, 전문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세계적 금속산업 메카 도시로서의 정체성과 특수성, 자존심 확립을 위해 쇠부리 기념관은 반드시 건립되어야 할 과제이며, 울산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톡톡한 몫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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