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출신 변호사·판사
‘형님 아우’ 사이가 된
브로커들의 세계
고질적 부패·불투명성
고스란히 드러낸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
수사·판결기준 지키는
인공지능 법조시대
기다려야만 하는가

“판사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판하고 기록을 보다 저녁 먹고 잠자는게 하루 일과의 전부다. 그렇게 살다보면 머리가 한쪽 방향으로 굳어져 버린다. 다양한 세상살이를 알아야하고 다양한 사고(思考)가 필요한데 자칫하면 외골수가 되기 쉽다. 그러면 사회를 보는 관점이 좁아진다. 세상은 변해가고 다양화되는데 나는 내 길만 간다고 하면 과연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겠는가.”
‘꼿꼿판사’로 대법관을 끝으로 32년간의 법관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난 2월 제15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수장을 맡은 민일영위원장이 기자에게 털어놓은 얘기다.
“4차 산업혁명이 되면 제일 먼저 사라질 직업이 판사다. 창의적·창조적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법률가의 기능이 소멸될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최근 우리나라 판사 2,800여명 중 일선 판사와 중견 판사 432명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한 말이다.
대법원장의 예고처럼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뉴욕 대형 로펌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가 최근 미국의 스타트업 로스인젤리전스가 개발한 AI(인공지능) 변호사 로스(ROSS)를 사용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에서도 법률서비스에 AI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법적·윤리적 문제만 해결된다면 5~10년 사이에 법정에서 AI 변호사를 활용해 소송을 진행하고 로봇재판장이 판결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여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와 남대문 노점에서 수박을 팔던 거대 화장품 회사 대표가 벌이고 있는 스캔들은 어떤 결말로 치달을까.
정운호라는 기업인의 도박사건을 둘러싼 법조비리 윤곽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이번 법조 스캔들의 요소요소가 막장드라마처럼 보인다. 일부 판사, 검사, 변호사들의 땅에 떨어진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그대로 입증하고 있다.
무엇보다 법조브로커들이 이렇게 활개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법조계의 고질적 부패와 불투명성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다시 드러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구명로비’를 했다는 브로커 이모씨가 관리하던 현직 부장판사만 5명이 된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문제의 브로커는 문어발식 인맥으로 전관 출신 변호사뿐만 아니라 ‘형님 아우’ 사이인 현직 판사들이 여러사람 있다.
법원·검찰 주변에 기생해온 우리나라 브로커의 역사를 보면 역대 정권을 뒤흔든 마당발들이 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때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을 뒤흔든 브로커 윤상림은 수사기관 유력 간부들이 상(喪)을 당하면 조의금으로 5,000만원을 내기도 했다.
그는 법원·검찰의 인사와 같은 조직 내부 비밀정보는 물론 원로 법조인들과 친분을 유지했다. 이를 이용해 권력의 상징인 검경의 최고 간부들을 협박하는 ‘거물·법조브로커’ 역할을 했다.
법조브로커들의 기승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의 재량폭이 워낙 넓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수사처리와 판결이 예측범위에서 이뤄지기보다는 검사·판사의 주관적 판단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브로커들이 파고들 여지가 클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모든 것에는 가격이 있다’지만 우리 변호사 시장에는 ‘가격이 없다’는 역설이 있다. 범죄나 사람, 혹은 시점에 따라 변호사 보수는 천양지차로 변한다. 세부내역은 어떻게 책정되는지 원가 계산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왜 그만한 돈을 받는지를 따지기도 곤란한게 이 바닥 생리다. 암시장(Black Market)같은 구조는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처럼 속물변호사와 파렴치한 의뢰인, 여기에 기생하는 약삭빠른 브로커를 만들어 냈다.
이번 사건은 법원 검찰 출신의 변호사 전관예우를 활용해 보석이나 집행유예를 받아내는 내부 거래의 변호사업계의 착수금 및 성공보수 문제가 함께 얽혀 법조계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대법원이 지난해 7월 형사사건 성공 보수금은 무효라고 판결했는데도 아직 편법적으로 온존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법조계의 부패를 그들의 양심에만 맡겨둘 수만은 없게 됐다. 그렇다면 브로커가 통할 수 없고 수사 처분과 판결기준을 원칙대로 지킬 수 있는 ‘알파고 법조인’시대를 기다려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