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가 떠난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경비원이 다가왔다. 그를 통해 전해 들었다. 5층 노인이 아내를 발견했고, 구급차가 와서 싣고 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경찰 조사에서 그렇게 진술했다. 경찰은 아내의 사고를 우울증에 의한 투신자살로 마무리했다. 경비원과 청소부는 아내의 피를 지웠다…

커피에 취한 노인이 말한다.

“어때? 마누라를 던져버린 기분이?”

나는 대답한다. 죽이는 기분이죠, 라고 진심을 말하지 못한다. 코끼리 눈을 파내는 것 같은 거죠, 라고 대답한다. 노인이 눈을 돌린다. 거실 벽에 사진이 있다. 나와 노인은 아내의 사진을 감상한다. 코끼리와 포옹하는 합성사진이다. 코끼리 옆에 있으니 아내는 고양이 상이다. 아내는 최저 35킬로그램이었다. 뼈 무게밖에 되지 않는 몸으로 마지막을 살았다. 자발적으로 죽은 것처럼 보이고 싶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야. 아내의 말이다. 그래서 던져주었다. 겁이 많아서 뛰어내릴 자신이 없다며 우는 것이 보기 싫었다. 사람들은 지어낸 말이라고 수군대지만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가 아내의 뼈로 모래시계를 만들어 커피를 볶겠는가. 나는 노인에게 들려주었던 아내 얘기를 당신에게 똑같이 들려주려 한다.

노인이 아내의 속옷을 들고 왔을 때 나는 커피 볶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리기에 생두를 고르다 말고 인터폰으로 다가가 화면을 바라보았다. 알 듯 모를 듯한 얼굴이었다.

“누구시죠?”

“물건 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물건이라뇨?”

“속옷 말입니다.”

“네?”

나는 물었다. 복도에서는 나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나는 노인의 표정을 살폈다. 렌즈 굴절 때문에 얼굴이 변형되어서 진지한 것인지 사무적인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노인은 속옷이라고 말했다. 문을 열어주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세게 부른 것이었다. 나는 인터폰 모니터를 끄고 현관으로 갔다. 문을 열었다. 노인이 문밖에서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거 이 댁 물건이 맞죠?”

“속옷이라 그랬잖아요.”

“예. 여자 속옷입니다.”

나는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내의 속옷이었다.
 
“이게 왜 거기에 있는 거죠?”

“맞으면 돌아가겠습니다.”

노인이 몸을 돌리려 했다. 

“아뇨. 잠깐 들어오시죠.”

나는 노인이 들어오도록 문을 더 크게 열었다. 노인이 들어왔다. 노인이 끈 슬리퍼를 벗고 거실로 올라섰다. 현관 신발이 단출했다. 내 운동화, 내 슬리퍼. 나는 노인을 소파로 안내했다. 모래시계가 초기화되면서 아내가 떨어지고 있었다. 노인의 몸에 새로운 공기가 딸려 들어온 것이 느껴졌다. 나는 속옷을 꺼내어 아내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레이스 문양과 색깔로 보아 그것은 아내의 물건이 맞는 것 같았다. 노인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펼쳐보기 민망했다. 이상한 것은 여러 가지였다. 노인이 어떻게 해서 아내의 속옷을 손에 넣게 되었는가, 그것이 아내의 물건이라는 것을 그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아내가 사는 집주소를 어떻게 알았으며, 어째서 나 혼자가 된 지금에서야 집으로 찾아와 물건을 내미는 것인가. 나는 노인에게 말했다. 

“커피 볶으려던 참이었어요.”

“커피, 좋죠.”

“좋아하시나요?”

“술은 끊었지만 커피는 못 끊었습니다.”

노인은 깍듯했다. 말을 확실히 매듭지었다. 나는 아내의 속옷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가져오시게 되셨죠? 어떻게 우리 집 물건인 줄 알고 찾아주시는지 궁금하네요.”

“별거 아닙니다. 6층부터 차례로 올라오고 있으니까요.”

“네?”

“12층에 오기 전에 쭉 훑었습니다. 댁 물건이 아니라고 했으면 13층으로 올라갔을 겁니다.”
“이 아파트에 사시나요?”

“5층.”

“뵌 적 있는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으실 텐데. 장례 치른 게, 얼마나 되셨죠?”

“어떤 장례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나는 하는 일이 창문 바라보는 것밖에 없는데 신경이 쓰여서 말입니다. 눈앞에 있으니까. 여자 속옷이.”

노인은 5층 창문 앞에 대해 설명했다. 속옷은 베란다로 날아들어온 것이 아니라 베란다 앞 나무에 걸렸다. 12층 베란다 앞은 허공이지만 5층 베란다 앞은 정원수였다. 잣나무, 전나무 종류였다. 나무는 옆으로 퍼지지 않고 일자형으로 곧게 뻗었다. 거기에 아내의 속옷이 걸렸다니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랬군요. 빨래 건조대에서 날아갔을 겁니다.”

“그랬을 수 있겠습니다만. 부인께서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부인 말고 다른 여자 분과 사시나요?”

나는 대답을 미뤘다.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마셨다.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 볶아서 한 잔 내려드릴게요.”

“고맙습니다.”

노인이 소파에 등을 젖히면서 말했다. 긴장을 푸는 눈치였다. 

아내가 떨어졌을 때도 제일 먼저 신고한 사람이 노인이었다. 내가 손쓰지 못하는 사이에 구급차가 와서 아내를 실어갔다. 

사이렌 소리가 동과 동 사이의 공간을 찢어놓는 동안 나는 아내를 찾았다. 아내가 베란다에서 몸을 날려버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구급차가 매우 급하게 떠났다. 나는 그것을 사이렌 소리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사라지는 것을 통해 감지했다. 숨이 붙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내가 외출할 때 신는 신발을 확인했다. 그리고 각 방을 확인했다. 아내의 신발은 현관에 있었고 아내의 몸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구급차에 실려간 사람이 아내였을까. 의심해보았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구급차가 떠난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경비원이 다가왔다. 그를 통해 전해 들었다. 5층 노인이 아내를 발견했고, 구급차가 와서 싣고 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경찰 조사에서 그렇게 진술했다. 경찰은 아내의 사고를 우울증에 의한 투신자살로 마무리했다. 경비원과 청소부는 아내의 피를 지웠다. 

아내의 유해를 나는 한동안 집에 두었다. 사람들이 왜 항아리 하나에 들어가는 유해를 따로 공간을 만들어 납골당에 모시거나, 강이나 산에 뿌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피도 작은 그것. 냄새도 나지 않는 그것. 35킬로그램이었던 아내는 줄어들고 줄어들어서 작은 항아리에 들어갔다. 내가 확실히 미쳤다. 미혜 때는 납골당에 보냈으면서 아내 때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죽었다는 것만 같았지 상황은 반대였다. 아내와 나는 미혜를 기다렸다.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사체를 기다렸다. 사체가 찾아지지 않자 희망을 걸었다. 집 안에는 허공이 깊어졌다. 죽지 않았나 봐.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그러지 마. 인정해야 해. 아내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다 죽었다고 말하더라도, 아니야! 아직 살아 있어! 하고 말해야 하는 게 부모 아니야? 당신이 미혜 엄마 맞아? 자격 있어? 나는 아내에게 소리쳤다. 아내는 단호했다. 그래 봐야 달라지는 건 없어. 결국 아내가 맞았다. 래프팅 회사에서 미혜의 시신을 찾았다. 경찰이 추가로 조사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아닙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렀다. 나는 퇴근길에 미혜가 생각날 때마다 차 안에서 기도를 했다.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었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여보. 저 방도 이제 정리해야지.”

“주말에 하자.”

“아니. 지금 하자.”

아내는 장갑을 내밀었다. 하얀 면장갑이었다. 우리는 석유 냄새 나는 장갑을 끼고 미혜의 물건을 분류했다.  

도시에서는 유품을 태울 장소가 없었다.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일에 플라스틱, 비닐, 철, 유리, 종이, 옷 등으로 나누어 쓰레기통에 넣어야 했다. 나는 아찔했다. 그날은 정해진 분리수거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미혜의 침대 위에서 위액이 나올 때까지 토했다. 이튿날 아내는 떠났다. 잠깐 나갔다 온다고 했는데 그곳이 아프리카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주관한 자원봉사였다. 나는 그 사실을 거의 일주일 만에 알았다.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냈더니 출입국 기록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나는 그 뒤로 납골당에 가지 않았다. 미혜의 유품을 트럭에 싣고 가 사람 없고 공기 맑은 산골에서 태워 보낼 계획도 접었다. 아내처럼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는 재활용품 분리수거일에 미혜를 플라스틱, 비닐, 철, 유리, 종이, 옷 등으로 나누어 처리했다. 동사무소에서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발급받아 가구에 붙였다. 

나는 노인에게 신문을 내밀었다. 노인은 신문을 펼쳤다. 나는 쇼핑백에서 속옷을 꺼냈다. 내가 던진 속옷이 맞는지 긴가민가했다. 속옷을 던진 것이 먼저였고 아내를 던진 것이 나중이었다. 아내를 강박해 속옷을 벗긴 다음 그것을 던졌다는 뜻이 아니다. 속옷을 던진 날도 있었고 아내를 던진 날도 있었다. 아내가 떨어질 때 나뭇가지에 걸렸다가 속옷이 벗겨졌을 수도 있겠다. 그랬다면 노인은 아내와 눈을 마주쳤을 가능성이 있다. 노인은 창으로, 아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신고했던 것일까. 아내의 속옷은 깨끗했다. 이게 뭐야! 아내가 벗어서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속옷을 나는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린 것이었다. 지저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노인의 손을 거쳐 내게 돌아온 그것은 깨끗했다. 나는 모래시계를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아내가 고요히 앉아 있었다. 노인에게 물었다. 

“혹시 제 아내를 보셨나요?”

“봤죠. 하루에 세 번 정도 외출하더군요.”

“만난 적도 있으신 것 같네요?”

“직접 부딪친 건 한 번입니다.” 

노인이 창을 바라보았다. 맞은편 동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그렇게 보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노인이 보는 앞에서 광고지를 뭉쳐 밖으로 던졌다. 공으로 변한 광고지가 허공에서 자취를 감췄다. 아내의 속옷을 그렇게 던졌음을 노인에게 보여줄 속셈이었다. 노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사람이 다치지는 않으니까요.”

잔을 던지든 접시를 던지든 그것은 화단에 떨어지므로 경제적 분쟁을 발생시키지 않았다. 자동차 유리창이 깨진다거나 지나가던 대머리가 박살난다거나 하는 등의 대물사건이나 대인사건 발생 가능성이 영 퍼센트 이하였다. 노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과를 던졌다. 화단에서 썩어 없어지거나 청소부가 치워 없앨 것이다. 노인이 놀란 눈빛을 보였다. 

“화단은 보기에 좋으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사람이 건물에 붙어서 걷다가 떨어지는 물건에 맞아 죽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비한 겁니다. 그리고 거기다 사람들 들어가지 말라고 나무를 심는 거예요. 주택 베란다에서는 뭐든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고추장 단지를 베란다 외부에 놓아두는 집도 있잖아요. 그런 일이 많았기 때문에 화단을 만드는 게 필수죠. 경험이 역사예요. 제 아내가 사고 났을 때 지나가던 사람이 있었으면 그 몸에 눌려 압사 당했을 겁니다. 아내가 묻더군요. 주거공간이 아닌 빌딩은 창을 작게 뚫는데 왜 그러냐고요. 답을 알면서, 나한테 자기 생각을 말하고 싶어서 물은 질문이었어요. 오피스 빌딩은 창을 통유리로 해놓고 문은 작게 냅니다. 작은 문이 완전히 열리지도 않아요. 비스듬히 당기게 되어 있죠. 내가 아내한테 뭐라 그랬게요? 사람이 뛰어내리는 걸 막기 위해서야. 일하다 보면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많거든. 개자식! 부장이 지랄하기에 난 난초 화분을 던져버렸잖아. 당신도 알지 그런 기분? 아내가 말했습니다. 빙고! 그런 빌딩은 밑에 화단이 없잖아.”

노인이 말했다. 

“난초 화분을 던졌으면 밑에 지나가던 사람이 다쳤을 수 있겠네요.”

“유리가 얼마나 단단했는지 금도 안 갔어요. 화분만 박살 났어요. 분 파편에, 구운 흙에, 부식토에…… 사무실 바닥이 난리가 났죠. 창은 멀쩡했고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평범한 회사 다녔습니다. 사무직이었어요.”

베란다를 녹화하는 시시티브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물건을 던졌다. 아내의 사진처럼, 정체가 증명되는 물건을 버릴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광고 전단지를 뭉쳐 공으로 만든 다음 던졌다. 딱딱하게 굳은 고구마를 던졌다. 철 지난 잡지를 던졌다. 단호하게 휙 던져버렸기 때문에 아래층에서는 몇 층에서 누가 던진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던진 품목 중에 아내의 속옷이 있었다. 비를 맞았을 텐데. 아내가 죽은 뒤 비가 왔으니까. 노인한테서 받은 속옷이 깨끗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탁을 해서 말린 걸까? 아내의 외출을 생각하다 말고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과 아내가 정신적으로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 아내하고 얘기해본 적 있나요?”

“한 번.”

“그 사람과요? 언제요?”

노인이 말했다. 나는 노인의 말을 통해 아내를 영상화했다. 나의 망막 바깥에는 창문과 노인의 얼굴이 있었고 나의 고막 바깥에는 노인의 목소리와 아파트 소음이 있었지만 나의 망막 안쪽에서는 5층 계단과 아내의 얼굴이, 고막 안쪽에서는 창문을 열고 닫는 소리와 고양이 울음소리가 펼쳐졌다. 뇌가 노인의 말을 영상으로 번역하여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나는 창틀에 올려두었던 팬티가 바람에 날려 가버렸다는 듯이 노인에게 말했다. 

“아내는 고양이를 키운 적이 없습니다.”

“창밖을 보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잖겠습니까. 사람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하고, 기계 소리 같기도 하고.”

노인은 바깥을 살폈다. 고양이 소리가 외벽을 타고 들어왔다. 현관을 열었다.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노인은 방화문을 열었다. 빛이 들어왔다. 고개를 들고 계단참을 올려다보았다. 창틀에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유리창이 닫혀 있어서 고양이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고양이가 유리를 긁으면서 노인을 노려보았다. 창은 겹이었다. 안쪽 창은 닫혔고 바깥쪽 창은 열린 상태였다. 고양이는 창 사이에 낀 것이 아니었다. 층이 낮았으면 바깥으로 뛰어내렸을 상황이었다. 고양이는 허공과 창문 사이에 갇혀 있었다. 

노인은 창을 열어줄 마음을 먹지 못했다. 고양이의 표정이 냉혹했다. 열어봐. 내가 나가기만 하면 네 눈알을 발톱으로 찢어버리겠어! 그런 말을 실어 보내고 있었다. 노인은 돌아설 수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겠는데 뭘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고양이가 태도를 바꾸었다. 표정에 애교를 섞었다. 노인은 마음이 놓였다. 고양이가 안면을 바꿔 연기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창을 열어주기로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겉과 속이 다른 게 인생이니까, 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노인은 고양이가 애교 부리던 모습을 설명했다. 내가 노인이었다면 창을 열어줬을 것이다. 애교에 넘어갔을 것이다. 그랬으면 고양이 발톱에 얼굴이 찢겼을 것이다. 노인은 빈 곳 없는 물 같았다. 다리 위에서 강으로 몸을 던진 사람들은 파열로 죽는다. 손에 잡히지 않는 물이 단단해지면 바위도 되고 창도 되고 망치도 된다. 속도! 떨어지는 속도! 속도가 물을 강하게 만든다. 내가 빠르게 돌진하면 물렁물렁하던 상대가 쇠처럼 단단해진다. 내가 느려지면 상대는 물러진다. 내가 물러지면 날카로움 위에 발을 대고 올라갈 수 있다. 송곳 위를 걸을 수 있다. 느려진다면. 깃털로 변신할 수 있다면 사람은 60층에서 몸을 날려도 상처입지 않는다. 떨어지는 속도가 바람보다 느리니까. 물은 빈 곳이 없다. 그래서 강하다. 자를 수 없어서 강하다. 노인은 물처럼 여유로웠다. 

“고양이하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 사모님께서 오셨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계단을 올라왔어요. 체구가 참 작으셨잖아요. 그러더니 부탁을 하는 겁니다.” 

“뭐라고요?”

“고양이 좀 던져주세요.”

“뭐요?” 

“그러시더군요. 4층이 한곈가 보네요. 4층까지는 애들이 뛰어내리고 없더니. 5층은 무리인가 봐. 아저씨, 고양이 좀 던져주실 수 있어요? 저는 밑에서 고양이가 착지하는 걸 보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거절하셨겠죠?”

“5층에서 던지면 살생입니다.”

나는 다시 노인의 언어를 영상으로 번역했다. 아내는 창으로 다가갔다. 문을 조금 열었다. 고양이는 몸을 움츠렸다. 애교를 부리며 제 앞발을 핥았다. 아내는 손을 뻗었다. 목을 잡고 던져버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고양이가 더 빨랐다. 아내가 손목을 움직이려고 문을 조금 더 여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고양이는 아내의 손을 긁고 팔에 올라타더니 얼굴로 달려들었다. 아내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고개를 휘저었다. 고양이는 아내의 머리카락을 잡고 매달렸다. 아내가 동작을 멈췄다. 고양이는 바닥으로 몸을 날렸다. 엄청난 속도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아내는 계단에서 넘어질 듯하다가 몸을 세우고 악을 썼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했던 말이 이해되었다. 5층 늙은이 알아? 여보? 그 늙은이가 나를 만지려고 하잖아. 엘리베이터에서. 그래서 내가 그 집으로 따라갔지. 보는 앞에서 내 손톱으로 내 얼굴을 확 긁어버렸어! 놀랐을 거야, 그 늙은이. 아내는 화장 솜에 알코올을 묻혀 피를 닦았다. 짜증이 일었다. 나는 아무렇게나 말했다. 

“가서 죽여버릴까?”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못하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런데 여보!”

“응?”

“고양이가 몇 층부터 공포를 느낄까? 몇 층부터 떨어지면 죽을까?”

“글쎄. 실험해봐.”

“어떻게?”

“1층부터 던져보는 거지. 층마다 고양이를 던진 다음에 내려가서 보는 거야. 시체 수를 세면 답이 나오겠지.”

“자기 진짜 영리하다. 나랑 생각이 똑같아.”

아내는 하루에 세 번 외출했다. 아침, 점심, 저녁. 사람 없는 곳을 찾아가 약을 먹었다. 아내가 나와 함께 산 것은 돈 때문이었다. 내가 없으면 그녀는 무일푼이었다. 약을 먹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래프팅 회사에서 받은 보험금을 반씩 나눴는데 어디다 썼는지 잔고가 없었다. 아침에는 아파트 옆 옹벽 아래에서 약을 먹었다. 그곳에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 이후에는 달랐다. 하교한 아이들이 그곳에서 놀았다. 아내는 한낮의 유흥가를 물색했다. 밤과 대조적으로 조용한 곳이었다. 그러나 불완전했다. 아내가 약을 먹으러 가면 식자재와 주류 운반 차량들이 분주히 오갔다. 유흥가에는 모텔이 많았다. 벽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에 자유가 있었다. 

아내가 나가면 어머니가 왔다. 어머니가 누나의 말을 받아 전했다. 아내가 유흥업소 골목을 거닐더라고 했다. 막대사탕인지 담배인지를 물고 유유히 걷더라 했다. 누나는 모텔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미친년.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누가 납치해 끌고 가서 죽여버렸으면 좋겠어.”

“아범아. 그러지 마라. 죄받는다.”

“정말이에요.”

“이게 뭐냐! 집이 난장판이잖아!”

어머니는 청소를 시작했다. 병수발을 할 때는 어머니도 나도 아내를 탓하지 않았다. 아내가 빨리 나아주기를 바랐다. 병 생각 하나뿐이었다. 아내도 치료를 받는 동안은 지금과 달랐다. 병한테 지지 않겠다고 밥을 열심히 먹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운동을 했다. 5년여에 걸쳐서 요양을 하고 치료를 했다.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서 얻었던 아프리카 풍토병은 물러났다. 그런데 완치 판정을 받고 나자 아내는 곡기를 끊었다. 병이 없어진 몸에 죽은 미혜가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치료 이후에 대한 준비가 너무 없었다. 완치는 저주로 변했다. 아내는, 근육이 매일 조금씩 이완되어 끊어지는, 풍토병에 비할 수 없이 난해한 우울증에 걸렸다. 아내에 비하면 나는 속물이었다. 미혜의 사고 소식을 듣고 반영구 휴가를 냈는데 죽은 미혜를 보고 나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에 나갔다.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아내는 병을 얻기 이전의 막막한 삶, 미혜를 잃었던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공포감에 질렸다. 

아내 담당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환자분을 혼자 두지 마세요. 부엌에 들여보내지 마시고, 베란다에 나가게 하지도 마세요. 창문은 웬만하면 닫아두시고 창 앞에 밟고 올라갈 수 있는 물건이 있으면 치우시고요. 낮은 층으로 이사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나는 의사에게 말했다. 뛰어내리면 내 책임 아니잖아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나는 일기에 썼다. ‘고층 아파트에 살면 고양이를 잃어버릴 확률이 줄어든다, 창틀에 앉아 있던 녀석이 문을 열었을 때 확 하고 뛰쳐나가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이란 마음에 허공이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 나타나는 물건이다.’ 아내가 창문 앞에 서 있을 때 나는 아내가 좋았다. 잡힐 듯 말 듯한 연애 감정이 되살아났다. 

아내의 체중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나는 터키석 귀걸이를 던졌다. 휘익. 창밖으로 날아갔다. 날아간 것은 어디로 갔을까. 바닥으로 내려가보았다. 화단에는 귀걸이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던졌던 다른 물건도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우리 집을 올려다보았다. 베란다 난간에 걸어둔 숄이 표식이었다. 내가 그것을 걸 때 아내는 ‘잠깐만’이라고 외쳤다. 나는 들어주지 않았다. 빨래집게로 숄을 고정한 다음 아내에게 물었다. 왜? 아내가 말했다. 아니야, 그냥. 내가 그녀를 던져버렸을 때도 아내는 ‘잠깐만’이라고 외쳤다. 나는 들어주지 않았다. 던진 다음 물었다. “왜?”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라져 있었다. 

저녁 약을 먹어야 하는 시각이었다. 아내는 귀걸이를 하고 학교에 갔다. 자동차 차단막을 넘었다. 밤의 초등학교에는 사람이 없었다. 운동장을 걸었다. 아내는 모래 밟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당직실 유리창에서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근무자는 아내를 알았다. 그는 멀리서 아내를 지켜보았다. 아내는 파우치에서 약을 꺼냈다. 알약을 씹어 먹었다. 이상하게도 밤에는 미행을 하게 되었다.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그런 것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아내 장례식을 치르면서 하게 되었다. 나는 진정으로 혼자가 된 것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여보. 나 따라다니지 마.”

“안 따라다니는데?”

“오늘은 신경 많이 쓰이더라. 내가 사람 없는 것 좋아한다는 거 알잖아. 부탁이야.”

“알았어. 안 그럴게. 그럼 이거 받아.”

나는 호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냈다. 아내의 파우치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아내의 광기를 내 근력으로 제압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올 것에 나는 대비했다. 출력 전압이 제일 높은 상품이었다. 

“뭔데 이거?”

“쉬워. 여길 잡고 누르기만 하면 돼. 누구나 쓰러질 거야.”

“충격기야?”

“호신용이니까 사람이 죽지는 않아. 겁먹지 말고 마음껏 써.”

“내게는 누구도 다가오지 않아. 누구도 손잡아주지 않아.” 

“그러지 마. 세상일은 알 수 없어. 누가 오면 이걸로 지져버려. 네 얼굴 좀 봐. 이게 있었으면 그 노인, 꼼짝 못하게 지져버렸을 거야.”

아내는 충격기를 받았다. 유심히 살폈다.  

“한번 해봐도 돼?”

“응?”

“이거 한번 써보고 싶은데.”

“…….”

“코끼리가 있으면 코끼리한테 해볼 텐데.” 

아내는 액자를 바라보았다. 마리아 빌리지에서 찍은 코끼리떼 사진이 들어 있었다. 나는 병과 경쟁하기 위해 에너지를 쌓으면서 미혜를 잊고 있었던 때의 아내가 그리웠다. 근육은 흐물흐물하지만 눈빛은 명료하던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코끼리는 눈도 깜짝 안 할 거야.”

아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난감했다. 아내를 위해 전기를 한번 먹어야 하나. 침대로 갔다. 얼마 만에 이렇게 누워보는가. 아내가 내 곁에 누웠다. 아내는 충격기를 들고 웃었다. 얼굴에 주름이 나타났다. 머리카락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살이 빠지니까 입술이 얇아졌다. 귓바퀴도 얇아졌다. 아내는 충격기 끝을 내 가슴에 댔다. 누르면 전기가 통하는 상황이었다. 아내가 갑자기 몸을 틀었다. 충격기를 자기 가슴에 대고 눌렀다. 순식간이었다. 충격기를 놓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뺨을 쳤다. 손가락을 펴고 충격기를 빼내려 했다. 악력을 이기지 못했다. 팔을 당겨 충격기를 해제했다. 아내는 몸을 뒤틀었다. 

이게 뭐야 씨팔. 나는 충격기를 창으로 던졌다. 창문이 깨졌다. 충격기는 창밖으로 날아갔다.

커피 맛은 시간이다.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아내가 흐른다. 시계는 정확해야 하지만 아내는 자기가 시간을 조절한다. 빠르게 떨어지는 날이 있고 느리게 떨어지는 날이 있다. 유리관을 막고 서서 정지시키기도 한다. 나는 아내를 달랜다. 막히면 흔들어준다. 그리고 레인지 레버를 돌려 불 크기를 조절한다. 커피 맛을 아내에게만 맡길 수 없는 것이다. 모래시계 속에서 아내를 흐르게 해두고 나는 커피를 볶는다. 생두는 팬 위에서 색깔이 변한다. 모래시계가 멎을 때까지 볶는다. 

선풍기를 튼다. 콩을 식힌다. 구운 콩은 뜨겁다. 향이 집 안에 퍼진다. 이틀에 한 번 혹은 사흘에 한 번이다. 신선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조금씩 자주 굽는다. 다른 때는 그렇지 않은데 꼭 뜨거운 콩을 식힐 때가 되면 눈물이 나곤 한다. 불 앞에서 흘린 땀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커피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아내를 내 안에 가둔다.

그런데 노인과 나누어 마셔야 한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할 일도 없는 늙은인데 뭐.”

“아내는 뛰어내리지 않았어요. 내가 던졌어요” 노인이 커피에 입을 댄다. 그를 던지면 5층 창 앞의 나뭇가지에 걸릴 것이다. 노인이 말한다. “그걸 믿으라고?” 나는 노인에게 말한다. “배가 고파서 그랬죠. 폭발한 거죠”…

“원래 뭐 하셨어요?”

“연구소에 있었습니다.”

“네…… 실례지만 어떤?”

“폭발.”

“폭파요?”

“폭파가 아니라 폭발.”

“네에. 죄송합니다.”

“많이들 그러니까. 없애버리고 싶은 게 다들 있으니까 그런가 봐. 폭파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 거죠.”

“커피 드세요. 좀 진합니다. 위스키 두어 방울 넣었어요.”

“술은 끊었는데.”

“이 정도면 알코올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마시기 불편하시면 다시 내려드릴게요.”

“고맙습니다. 그냥 마시겠습니다.”

나는 베란다로 나간다. 난간에 팔을 얹는다. 12층에서 직각으로 내려다본다. 어지럽다. 정원수의 꼭대기가 보인다. 5층은 노인의 집이다. 저 가지에 아내의 속옷이 걸렸다. 노인은 그것을 걷어서 세탁을 했다. 이상하다. 어떻게? 손을 뻗어서 잡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닌데. 나는 노인을 바라본다. 노인은 커피를 마신다.

“가족은요?”

“없습니다. 평생 혼자입니다.”

“독신이세요?”

“그렇죠.”

“그런데 아내 속옷을 어떻게 가지게 되셨죠?”

“말씀 드렸잖아요. 가지에 걸려 있어서 마음이 불편했다고.”

“손에 안 닿았을 텐데.”

“난 과학잡니다. 도구를 활용할 줄 알아요.”

“좀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뭐가요?”

“세탁도 하셨잖아요.”

“그게 뭐 이상합니까. 지저분하기에 세탁기에 넣었어요. 세탁기가 돌고 있었거든요.”

“그게 이상한 거 아니에요? 안 이상해요?”

“난 모르겠네요. 어쨌든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창문으로 자꾸 뭘 던지는 게 몇 층인지 알아보고도 싶었고.”

“왜요?”

“난 창문을 열어놓고 바라보는 게 낙인데, 어느 날은 휴지가 떨어지고 어느 날은 과일이 떨어지고 어느 날은 커피 찌꺼기가 떨어지고.”

“제 아내가 떨어지는 것도 보셨어요?”

“미안합니다. 커피 좀 더 주시겠어요? 맛있는데.”

나는 부엌으로 간다. 노인은 창문을 열어놓고 왔다고 했다. 노인의 체중을 생각한다. 50킬로그램짜리 바벨을 생각한다. 

노인에게 인생의 마지막 커피를 내려 준다. 새로 볶은 콩으로 고농도 카페인을 추출한다. 김이 솟는다.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 위에 위스키를 한 컵 추가한다. 커피를 베이스로 삼은 알코올 칵테일이다. 노인의 뇌 속에 아내가 들어 있다. 아내를 빼내야 한다. 아내가 말한다. 던져주실 수 있어요? 저는 아래에서 착지하는 걸 보고 싶어요. 목이 부러지는 걸 보고 싶어요. 노인은 거절한다. 그때 고양이를 던져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고양이의 척추와 경추가 부러지는 광경을 목격했더라면. 노인을 바라본다. 코끼리처럼 주름이 많다. 움푹 들어간 눈으로 액자 속의 아내를 바라보고 있다. 아내의 속옷에서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이 순간 노인이 아내를 공유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말한다. 

“아내는 뛰어내리지 않았어요. 내가 던졌어요.” 

노인이 커피에 입을 댄다. 그를 던지면 5층 창 앞의 나뭇가지에 걸릴 것이다. 노인이 말한다. 

“그걸 믿으라고?”

나는 노인에게 말한다. 

“배가 고파서 그랬죠. 폭발한 거죠.”

아내는 밥 냄새를 싫어했다. 밥시간이 되면 약을 먹으러 나갔다. 나는 되도록 밖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가. 나는 커피에 위스키를 부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아내를 맞이하는 것도 기분 전환상 필요할 것 같았다. 전화가 왔다. 어머니였다.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어머니 목소리를 듣자 배가 고팠다. 맛있는 밥을 지어 먹고 싶었다. 레인지에 돌려 먹는 냉동밥이 아니라 냄비에 끓여서 식기 전에 첫술을 뜰 수 있는 나만의 밥을 먹고 싶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유가 있었다. 한 그릇만 지을 것이므로 시간도 많이 필요치 않았다. 

냄비를 꺼내고, 쌀을 찾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쌀 봉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쌀을 두었다고 생각한 위치에 커피 생두가 있었다. 커피도 볶아야 하는데…… 아내가 들어오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늘었다. 아내는 커피 향을 즐기지만 커피 볶는 연기는 싫어했다. 싫어도 참는 것이 인간이건만 싫으면 싫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인간에게 달라붙은 질병 중 하나가 되었다. 아내의 병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나는 아내가 없을 때 커피를 볶았다. 

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밥을 떴다. 김에 가려져 있던 밥에서 윤기가 흘렀다. 군침이 돌았다. 

현관 전자자물쇠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였다. 

“밥 먹으려고?”

아내가 물었다. 나는 식탁을 바라보았다. 조리대 앞으로 다가가 냄비 뚜껑을 닫았다. 김이 오르는 밥을 바라보자 눈물이 났다. 밥그릇을 덮었다. 창을 열고 환풍기를 돌렸다. 아내에게 말했다.

“아니. 나가서 먹지 뭐.”

“고마워. 먹고 들어와.”

당분 많은 음료수로 배를 채웠어야 한다. 설탕을 들이부어서 뇌를 속였어야 한다. 배고픔을 느끼는 뇌의 감각을 눌렀어야 한다. 나는 밥 냄새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다. 집이 도대체! 이게 뭐냐!

“지겨워! 씨팔, 지겨워!”

“뭐라고?”

“지겨워! 지겹다고!”

배고픔을 잠재웠으면 됐을 일인데. 나는 이유를 아내 때문인 것으로 착각했다. 아내 때문에 내가 미쳐버린 것으로 잘못 알았다. 아내가 말했다. 

“자기가 그렇게 나오지 않아도 난 곧 갈 거야. 누가 날 죽이기 전에, 난 내가 죽을 거야.”

“그만두라니까.”

“자기가 날 버리면 돼. 그러면 내가 죽어버릴게. 날 버려. 던져버리란 말야. 난 가볍잖아. 지겹다면서.”

“그럴 기분 아니야. 그만해.”

아내가 내게 다가왔다. 나를 안고 코에 키스했다. 목과 귀를 애무했다.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혀가 싫었고, 손길이 싫었다. 비쩍 마른 몰골이 싫었다. 가슴 있는 자리에서 갈비뼈가 느껴졌다. 참으려 했다. 아내가 귀를 잡고 얼굴을 비볐다. 참기 힘들었다. 왜 이래. 나는 아내를 밀어버렸다. 아내가 넘어졌다. 아내는 나를 노려보았다. 파우치에서 약통을 꺼내 던졌다. 부엌으로 날아갔다. 약통이 식탁 위의 물건을 쓰러트렸다. 커피 잔이 떨어졌다. 커피 통이 깨졌다. 콩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단단하게 마른 콩이 분수처럼 각각으로 뻗어나갔다. 

“그만하란 말야! 그만해!”

나는 아내를 밟을 듯이 외쳤다. 아내가 몸을 돌렸다. 

나는 현관으로 나갔다. 뒤로 돌아보았다. 아내가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그래. 뛰어내려. 자발적으로 종료해.”

아내가 웃었다. 

“병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마. 당신이 도와줘.”

아내가 말했다. 나는 신었던 신발을 벗었다. 아내에게 다가갔다. 밥을 먹으러 나갔어야 하는데 아내에게 걸어갔다. 아내를 안았다. 아내는 내 어깨에 기대었다. 나는 허리를 잡았다. 한 줌에 잡힐 듯 가늘었다. 아내가 원시림 속의 동물 같았다. 

“잠깐만.”

아내가 말했다. 

나는 기다리지 않았다. 아내를 던진 다음에 물었다. 

“왜?”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잠깐을 요구했을까. 장례를 치르는 동안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아내를 버릴 수 없었다. 나는 계획도 없이 아내의 유해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매일 밤 창에 비치는 나를 바라보았다. 내 몸도 밖으로 던져버릴까. 미혜가 보고 싶었다. 홧김에 모든 유품을 분리수거로 보내버린 것이 억울했다. 치워버리면 눈에서 사라질 거라 여겼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뇌 속에 기록된 과거들이 밤마다 망막 안쪽에서 활개를 쳤다. 눈을 감아도 그것들은 살아 움직였다. 나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아빠, 잘 갔다 올게. 래프팅 보내주고 엄마 몰래 준 용돈 고마워. 나 없는 동안 엄마하고 싸우지 마. 사랑해. 갔다 오면 감자탕 사 줘. 미혜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남긴 편지가 육성으로 전환되어 고막을 울렸다. 감자탕 사 줘. 맛있는 거 사 줘. 미혜가 애교를 부리며 매달렸다. 나는 망막을 찢고 고막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팔짱을 끼고 매달리는 나의 팔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저희는 안전교육을 충분히 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거짓말로 들렸다. 하지만 살기 위해 필요했다. 보호색을 입는 동물처럼, 거짓으로 죽음을 시늉하는 벌레처럼 거짓말은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잊히지 않는 걸 어쩐단 말인가. 원망이 드는데 어쩐단 말인가. 아내를 던져버렸더니 죽은 미혜가 찾아왔다. 시도 때도 없었다. 

나는 아내의 약통을 열었다. 병원에 갈 필요 없었다. 아내가 호소했던 증상 그대로였다. 나는 약을 먹었다. 밥도 끊었다. 하지만 미혜는 나를 찾아왔다. 아빠. 미혜는 나를 부르며 다가와 엄마를 찾았다. 약은 듣지 않았다. 미혜야 이제 오지 마. 찾아오는 것을 막으려면 뇌를 파내는 수밖에 없었다. 뇌를 도려내 기억을 지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몸을 던져야 했다. 가버리기로 했다. 

나는 술을 마셨다. 큰 컵으로 입에 들이부었다. 아내를 미행하고 다독이느라 몇 년을 참았던 술이었다. 알코올이 전신에 퍼졌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다. 나는 엉망진창으로 취해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다. 코끼리 사진 액자가 박살 나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깨진 술병과 술잔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온통 나 혼자였다. 나는 아내의 유해를 바라보았다.

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거야? 잠깐만 기다렸으면 뭐라고 했을 거야? 살려달라고?

나는 악을 썼다. 아내 유해를 통째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아빠 그러지 마. 엄마 나한테 줘. 미혜가 말했다. 아빠가 날 찾지 않는 동안 내가 만난 사람은 엄마였어. 날 만나느라 엄마는 그렇게 된 거야. 아빠는 엄마만 바라봤어. 미혜가 말했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아내에게 전념했다니. 미친년한테. 

그래, 나도 가버리자. 나는 난간 앞에 의자를 놓았다. 사는 게 별거냐. 여보. 네가 있을 때 나는 편했구나. 네가 미혜 생각에 미쳐 있을 때 나는 너를 비아냥대고 지겨워하고 증오하면서 미혜를 잊었구나. 난 너무 생각이 없었구나. 그동안 네가 고생 많았다. 하지만 넌 내가 던져주었으니 얼마나 좋았냐. 나는 아내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난간을 붙들고 있다가 나는 유해가 놓인 거실로 돌아갔다. 항아리 옆에 모래시계가 정지되어 있었다. 커피 볶을 때 가늠하라고 아내가 사준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들었다. 유리통 안에서 모래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노란색 인조 모래였다. 나는 모래가 흐르는 것을 주시했다.

나는 드라이버를 꺼냈다. 모래시계의 뚜껑에 있는 나사를 풀었다. 모래가 쏟아지지 않도록 정성을 다했다. 모래는 참 부드럽고 가벼웠다. 귀퉁이의 나사를 풀자 뚜껑이 떨어졌다. 나는 모래를 흔들었다. 시계를 들고 창가로 다가갔다. 철책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팔을 내밀었다. 모래시계를 기울였다. 모래가 바람에 날렸다. 방향 없이 흩어졌다. 

텅 빈 모래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떨어질 게 없구나. 뇌를 말려 뿌리면 이렇게 되겠구나.  

나는 아내의 유해 항아리를 식탁 위에 올렸다. 가벼웠다. 떠오르는 아내의 얼굴을 누르기 위해 애를 썼다.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나는 찬장을 열었다. 커피 그라인더는 내가 원하는 위치에 있었다. 나는 그라인더를 손에 잡았다. 커피 콩을 넣는 입구가 손가락에 걸렸다. 나는 그라인더 입구를 열었다. 내부를 청소했다. 그리고 유해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손을 넣었다. 까슬까슬한 가루가 잡혔다. 나는 인사했다. 자기, 오랜만이다. 아내가 응답했다. 그래, 오랜만이야.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커피 콩 숟가락을 잡았다. 그것으로 아내를 떠서 그라인더에 넣었다. 그라인더에는 굵기를 조절하는 장치가 있었다. 나는 레버를 돌렸다. 분말 크기를 최소에 맞췄다. 나는 스위치를 눌렀다. 성긴 마음 같은 나의 아내가 그라인더 속에서 곱고 연하게 갈렸다. 나는 그라인더가 돌아가는 동안 뇌의 활동을 재개시켰다. 난 정말 배가 고팠던 것일까. 아내는 무슨 말을 하려고 잠깐을 요구했을까. 모터는 힘차게 돌았다. 1분 후 나는 곱게 변한 아내를 유리통 안에 넣었다. 나사를 잠그고 모래시계를 시험해보았다. 투명한 통 안에서 아내가 고요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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