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퇴직자 갈 곳 없어 바다낚시로 소일
자녀 결혼 등 막막한 미래에 가슴은 먹먹
동구 떠나 타지서 제2 인생 설계도 모색
방어동·전하동 상가·원룸 텅텅…매매·월세 거래 뚝
꼭꼭 닫은 지갑에 월봉시장 빈 점포 수두룩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만 학수고대
풍요의 땅이었던 울산 동구가 조선업 불황으로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눈물의 땅이 됐다.
20일 오전 울산 동구 방어동 슬도 등대 곳곳에 오토바이들이 주차돼 있었다. 아침부터 오토바이 뒷좌석에 낚시장비를 실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현대중공업에 있어야 할 오토바이 들이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이들은 홀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침울하게 먼 바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던져놓은 낚싯대에는 크게 관심도 없어보였다.
30년전 울진에서 내려온 최모(58)씨는 현대중공업에 취업해 동구에 뿌리를 내렸다. 그는 젊은시절을 바쳤던 회사를 지난달 말 떠났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회사가 희망퇴직자 신청을 받았고 최씨는 더 버텨봐야 결국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일자리를 잃은 지난 보름동안 그에게 평소에도 즐기지 않던 취미생활이 생겼다. 이날처럼 슬도에 나와 낚싯대를 잡는 일이 일상이 되버렸다. 집에 있으면 자신도 의기소침해지고 이를 아내가 보면 상심할까봐 자의반 타의반으로 결정한 취미다.
그는 일터를 떠난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늘 현장에서 착용하던 작업용 고글을 끼고 있었다. 최씨는 “조선업종에 종사하면서 가족을 건사하는 일 외에는 해본일이 없다”며 “아직 슬하에 혼기가 찬 두 자녀가 있는데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몇마디 말을 주고받던 그는 북받치는 감정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돌리고 고글 안쪽에 맺힌 눈물을 땀인 것 마냥 훔쳤다. “직접 퇴직을 결정하고도 마음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것 같다”고 심경을 전하는 그의 손등은 여전히 눈물자국으로 젖어있었다.
근처에서 낚싯대를 기울이고 있던 박모(52)씨도 고향인 동구를 떠날 거라고 말을 거들었다. 그에게 고향 동구는 더 이상 희망의 도시가 아니었다. 한때 고향은 그에게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었고, 세계 조선업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박씨에게 동구는 자신을 밖으로 내모는 비정한 고향이 됐다. 그는 “얼마 안 되지만 그동안 모아둔 돈과 퇴직금으로 식당 일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장사가 잘되던 식당들도 문을 닫고 기업과 근로자들까지도 지갑을 닫고 있는데 고향이라고 동구에서 장사를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대중공업 인근 방어동과 전하동 일대 상가 출입문에는 ‘점포세’, ‘급매’라는 큼지막한 문구가 쉽게 눈에 띄었다.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이곳은 세입자를 찾아보는 게 더 힘든 일이 됐다. 부동산 시세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집주인은 물론 중개업을 하는 이들까지도 울고 있다.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 사업본부가 있는 동구 방어동 꽃바위 아파트 주변 원룸은 빈집이 더 많다. 일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모(63)씨는 “몇년 전에는 원룸을 찾는 사람이 많아 주인이 큰소리칠 정도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입장이 바뀌었다”며 “매매는 아예 찾기도 힘들고 원룸주인들이 월세를 50만원에서 35만원까지 내렸지만 방이 나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화정동의 한 부동산 소장 김모(58)씨는 ‘사장님’에서 아르바이트 신세가 됐다. 장사가 안되는 가게를 지키는 대신 치킨집에서 월세라도 벌기로 한 것이다. 그는 아침이면 문을 연 부동산 가게를 옆집 세차장 주인에게 맡기고 치킨집에서 청소 일을 한다.

화정동 월봉시장 상점들은 점심시간이 돼서야 문을 열었다. 일찍 장사를 시작해도 찾아오는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월봉시장에서 35년간 포목상을 해온 시장 월봉시장 진흥협동조합 도가매(68·여) 이사장은 30여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고 했다. “시장 상인들이 현대중공업 직원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던 시절도 있었다”며 과거를 회상하던 도 이사장은 “계속되는 불황에 너도나도 허리띠를 졸라매다 보니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은 상점들”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위해 민관합동조사단이 현장실사를 다녀갔다. 조선업이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고용유지 지원금 등 각종 금융지원을 받게 되며 실업급여 지급기간도 확대된다.
경제활동의 기업 의존도가 높은 동구는 정부에서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자체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자리 창출사업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동구 관계자는 “조선업이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기업과 노동자들의 경제활동을 독려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온 중공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