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학
울산과학대 교수.관광경영학 박사

필름회사 코닥(Kodak)의 연구원이었던 스티브 새션은 1974년 필름 없는 카메라인 디지털 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탄생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물론 필름의 교체와 현상에 따른 불편해소 등의 고객 욕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코닥의 경영진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기존의 필름 시장을 놓치기 싫었다. 당장의 매출감소를 우려했던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카메라의 상용화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코닥의 발명품인 디지털 카메라는 역설적으로 훗날 코닥을 잡아먹는 불가사리가 되고 말았다.

즉 1990년대부터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필름이 필요없게 돼 결국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때문에 몰락하게 된 셈이다. 세계적 필름회사였던 코닥은 당시 너무 잘 나가는 사업에 안주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경영 판단의 미스로 인해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코닥이 미래의 환경을 통찰해 필름 시장을 줄이고 디지털 카메라를 선도적으로 상용화했다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금선탈각(金蟬脫殼)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손자병법 36계 중 제21계로서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감쪽같이 몸을 빼 도망하는 계략을 말한다. 이후 금선탈각은 ‘금빛 매미는 자신의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던짐으로써 만들어진다’ 또는 ‘애벌레가 금빛  날개를 가진 화려한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껍질을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는 혁신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일엽지추(一葉知秋)란 고사성어도 있다.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옴을 안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보고 장차 오게 될 일을 미리 짐작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필름회사 코닥은 금선탈각하지 못했고, 일엽지추도 무시했기 때문에 몰락한 것이다. 

최근 자연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던 울산이 지진과 홍수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필자뿐만 아니라 울산 시민들은 최근에 타지의 친인척 등으로부터 안부 전화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번 태풍 ‘차바’로 인해 울산에는 시간당 최고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울산 기상관측(1946년) 이래 최대의 집중호우라고 한다. 폭우로 인해 울산에서는 3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은 145세대 331명이 발생했으며, 주택침수 2,968건, 차량 침수 1,670건 등의 피해가 집계됐다. 또한 중구 태화·우정시장의 점포 300여 개가 물에 잠기고, 울주 반천의 아파트에는 차량 600여 대가 침수됐으며, 현대자동차 등 기업도 공장가동이 중단되는 물난리를 겪었다. 피해를 입지 않은 울산 시민들은 마음의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피해는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인재라는 목소리도 높다. 대표적인 인재의 사례로 혁신도시를 들고 있다. 즉 혁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이 지역에 배수 기능이 상실해 그 물과 흙이 저지대인 태화시장과 우정시장 등으로 유입됐다는 것이다. 이는 혁신도시를 건설하면서 홍수에 대한 배수의 기능을 확보하지 못한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수해의 피해 현장은 관계 당국과 전국의 자원봉사자 및 주민들의 노력으로 빠르게 회복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두 번 다시 이러한 피해가 나지 않도록 방재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인재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개선할 것은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당국에서도 이번 태풍피해를 계기로 울산권 풍수해종합평가를 실시해 사전준비사항 및 초기대응 상의 문제점과 제반 방재시설 기준에 대한 전면조사 등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하니 주목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 하고 마음을 놓는 데서 탈이 난다는 뜻이다. 이번 태풍을 계기로 당국과 관계자들은 설마를 버리고, 지금까지 방재에 대한 관행과 관습으로부터 금선탈각해야 한다. 또한 이번 태풍을 일엽지추로 감지해 향후 재난으로부터 만반의 방재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필름회사 코닥의 교훈을 되새겨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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