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시작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첨단 기술의 등장, 그리고 현존 직장의 소멸 등을 점칠 뿐,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고 이에 수반된 변화를 선도할 인재 육성에 대한 논의는 그리 많지 않다. 4차 산업혁명도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인간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의에서는 인재 육성, 그 중 특히 인성교육에 대한 언급이 미흡한 듯하다.  

물론 인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듯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이 나오고 있으며, 교육 기관에서도 학업 중심 교육을 탈피, 인성교육을 다각도로 모색하고는 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의 인성 문제’라고 불리는 주제는 여전히 예의범절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아직까지도  이웃에게 인사 잘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라는 예절교육이 인성교육의 주요 내용이라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전 마을 공동체 같은 곳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최근 젊은이들은 타인과 관계를 맺기 보다는 학업과 스펙 만들기에 시간을 더 쏟고 있다. 그리고 소통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직접 만나서 얘기하기 보다는 문자, 이메일, SNS 등으로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인간관계가 믿음과 평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생산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접속해 있다고 해도 관계는 끊어져 있다. 사회적 유대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결합을 지속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며, 익명게시판에서나 자신을 드러내고 상처를 호소한다. 이와 같이 상호 의존할 수 있는 관계의 부재가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대변한다. 인간관계는 헌신, 협조, 타협 등과 같은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으로 온종일 접속해 있지만, 정작 상호의존 가능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지나가다 마주치는 타인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하는 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더 이상 전통 사회의 예의는 따지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변화된 사회에 맞게 인성을 적절히 정의하고 이를 기준으로 하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인성 교육의 주요 목적은 바른 생활을 하는 착한 학생을 키우거나 예절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집단에서 타인과 협동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창출하는 인재를 키우는 일이 되어야 한다. 미국 인기 TV 드라마 중 하나인 ‘하우스’의 주인공은 진단의학과 의사로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천재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천재 의사 혼자서 문제 해결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진단의학과에는 4명의 전문의들이 있고, 이들과의 열띤 토론을 거쳐서 문제를 해결한다. 아무리 똑똑한 천재라도 혼자서는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굳이 전통 사회의 인성교육 철학을 따르고자 한다면 선비정신에 주목하여,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이상적인 역할 모델로 삼았던 청백리 (淸白吏)에 대하여 가르치길 바란다. 탐관오리(貪官汚吏)와 반대되는 청백리는 존경의 대상이었고,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리고 선비 정신의 핵심은 배운 바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었다. 진정한 선비라면 불의에 분노하였고, 약자와 연대하였으며, ‘나는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했다’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인성 교육이란 꽤 느리고 힘든 과정이다. 실제로 인성교육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10년, 아니 3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인구가 얼마 되지도 않은 젊은이들에게 한국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본다면 인성교육이 그 무엇 보다도 절실한 듯 하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의 발전과 현존 직업의 소멸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변화도 의미한다. 
타인과 소통하고 협동하며, 자신의 역할과 직책에 준하는 책임감을 가지는 태도를 내면화한 인재가 한국 사회의 미래를 밝게 할 것이다. 2017년 정유년을 맞이하여 전국의 교육 기관이 하루 빨리 변화하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 입각한 인성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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