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 교수·전 울산시 경제부시장
같은 동물이나 식물도 ‘외형’이나 ‘성향’이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그들도 ‘크기’ 별로 줄을 세워보면 일정한 패턴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같은 DNA를 가지고 수백, 수십 만년을 진화해 왔으니 평균적인 개체가 다수를 차지하고 평균값에서 멀어질수록 해당 개체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래프를 그리면 종모양이 된다. 이런 형태의 분포를 ‘정규분포’라고 한다.
자연계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분포형태다. 좌우는 평균값을 중심으로 50 대 50이다. 다시 좌와 우를 각각 4등분해보면 평균값에 가까울수록 다수가 몰리니 각각 34.1%, 13.6%, 2.1%, 0.1%가 된다고 한다. 인간들도 자연의 산물이니 ‘외형적인 크기’나 ‘성향’도 일정한 분포형태를 가질 것이다.
그럼 ‘성향’은 어떤가? 대표적인 복합성향 중의 하나가 ‘현실과 이상’이다. 태어날 때는 물들지 않았더라도 경험을 통하여 경향성을 띄게 된다. ‘여기를 꽃자리’로 만들려는 성향이 강해지면 ‘현실주의’로, ‘저기의 꿈’을 쫓는 성향이 강해지면 ‘이상주의’로 기울어질 것이다.
정규분포에 대입해 보면 좌우 각각 34.1%는 중간층에 해당된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색깔이 얕은 ‘중도파’다. 인간 본성인 자기의 이해관계에 가장 민감한 보통사람들일 것이다.
좀 더 좌우로 가면 각각 13.6% 층이다. 소신이 강할 것이니 ‘주류’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중심에서 멀지는 않으니 상대를 이해하는 아량도 있을 것 같다.
좀 더 좌와 우로 가면 각각 2.1%가 된다. 아마도 ‘자기 과잉 확신’이 강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를 인정하는데 점점 인색해질 것 같다. 그리고 ‘끝단’에 있는 0.1%는 아마도 급격한 변혁을 꿈꾸는 ‘몽상가’나 타협을 모르는 ‘옹고집’이나 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계층이야말로 ‘빛’과 ‘소금’이 될 가능성이 크니 배척만 할 대상은 아니다. 이런 전제가 맞는다면 소수의 샘플만으로도 특정 사안의 호·불호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대한민국 5,000만을 이런 분포로 분류하면, ‘자기 과잉 확신’과 ‘끝단’은 합해서 2.2%이므로 각각 백만 정도로 계산 된다. 어떤 사안을 두고도 이들의 소신에 찬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클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중도’인 좌우 각 34.1%다. 이들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게임 끝’ 이기 때문이다.
성향이란 오랜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면 변화가 적어야 된다. 과거에는 특정사안에 대한 호·불호의 예측이 거의 정확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차이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면서 실패의 연속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투표나, 미국 대선투표 등의 예도 그렇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장 가능성 있는 가정 중의 하나가 좌우의 ‘중도’ 각 34.1%가 유동적이란 것이다. 일방적인 정보를 소수 엘리트가 독점했던 ‘아날로그 시대’에는 성향이 비교적 ‘고정적’이었으나, 다방향의 정보를 공유하는 ‘디지털 시대’는 개개인이 목소리를 ‘직접 표출’하고 ‘참여’하는 성향이 강해 졌다는 이야기다. 좀 더 적극적이고 동적인 ‘디지털 세대’의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다.
이러니 ‘아날로그 세대’는 ‘디지털 세대’가 포퓰리즘적 성향으로 기울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럼 정규분포로부터 ‘아날로그 세대’의 성향을 다시 한 번 짚어보자. 좌우의 끝단에는 ‘자기 과잉 확신과 끝단’이 늘 존재해 왔고 그들의 목소리도 늘 컸다. 오히려 맹목과 과격이 어른거리는 측면이 없지 않다. 반면, 디지털 세대는 정보의 공유로 한결 똑똑해졌음에 틀림 없다. 번지르르한 선전도 금방 들통이 난다. 이제는 투명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돌이켜보면 촛불집회가 이런 ‘디지털 세대’의 등장을 알려주는 사건일 것만 같다. 어떤 정치집단의 선전 선동에 100만 이상이 모이겠는가. 자발적인 참가자들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다. 100만 군중이 모였어도 선동에 의한 과격한 행동이 발을 붙이지 못했고, 축제 형식으로 각자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발적으로 뒷정리를 하는 ‘디지털 세대’에서, ‘집단지성’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 않는가. 과거 ‘아날로그 세대’가 만들어 내지 못한 ‘디지털 세대’의 ‘신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