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前 울산대 교수

일본 아베 총리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확정 후 제일 먼저 통화한 해외 정상 중 한 명으로, 트럼프 당선인과 회담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오바마 미대통령과 함께 진주만 공습 희생자에게 조의를 표명하는 연출로, 미일동맹의 중요성을 트럼프와 공화당 매파참모들에게 각인시켜 준 친미외교 전략을 보여주었다.

올해(2017)는 ‘하나의 중국’ 외교정책을 흔들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당선자와, 강군과 전방위 외교 강화로 중화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의 시진핑이 격돌할 한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미국과 위대한 중국을 추구하는 초강대국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일본은 센가쿠(중국명 다오위다오)열도와 남중국해 영유권분쟁 등으로 얽힌 동아시아에서, 변함없고 영원한 미국의 동맹자임을 강조하고, 또한 러시아를 경제적 파트너로 삼아 입지를 굳히는 외교정책으로 국익도모와 함께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고 한다.

아베의 외교술은 조선말 대한제국 병탄(倂呑)을 총괄 지휘한 아베와 같은 조슈 번(야마구치 현) 출신이자 한일합방의 주역인 가쓰라 다로의 친 영미외교전술을 생각나게 한다.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조선병탄과 함께 만주를 포함한 중국 대륙진출 전략은, 부동항을 얻기 위하여 극동진출을 노린 러시아 주도의 ‘삼국간섭’으로 좌절되었다.

러시아는 국제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프랑스와 프랑스 경쟁국인 독일과 함께 일본에 할양(割讓)한 요동반도를 청에 되돌려 주도록 요구한다. 당시 국력으로 삼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일본은, 전쟁은 승리했지만 외교정책에서 패하여 대륙진출이 10년간 지연되었다.

일본은 의화단사건 이후 만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러시아에 만주를 맡기고, 대신 한국을 장악하자는 이토 히로부미 등 문관출신파와, 만주에서 러시아의 단독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무력으로 대립하고자 하는 가쓰라 다로 등 무관출신파와의 충돌에서, 가쓰라 다로의 방안이 채택되어 러일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가쓰라 다로는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조선을 탄병(呑倂)하기 위해, 당시 세계 최강국가인 영국을 동맹 파트너로 삼는다. 영국은 러시아가 만주 등 중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용납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 견제를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게 된다.

일본은 1차 영일동맹(1902)으로 국채를 영국에 팔아 전비를 마련할 수 있었고, 최신식 영국 군함을 매입하여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쓰시마 해협에서 섬멸시켜 육전과 해전 모두 러일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영국으로부터 한국 지배를 외교적으로 보장받는 2차 영일동맹을 체결한다(1905).

가쓰라 다로는 러일전쟁 직후 도쿄에서 비밀리에 미국 육군 장관 하워드 태프트와 필리핀과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가쓰라-태프트 협정(1905)을 맺었다. 가쓰라 다로는 영미일 동맹으로 대한제국의 문제에 영국과 미국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차단장치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재정적 지원(일본 국채매입)을 받아 러일전쟁에 임할 수 있었다.

일본은 러일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르면 불리할 것을 알고 속전속결로 나가되, 강화(講和)의 중재자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을 타진해 놓고 친일여론을 조성하는데 성공한다. 쓰시마해전으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미국이 러시아와 협상의 중재자로 나설 것을 요청해 포츠머스 강화회담을 성사시킨다. 가쓰라 다로의 친미외교 전략으로 체결된 포츠머스 강화조약으로(당사국인 한국이 도외시 된 상황에서)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의 국제적 동의(미국, 영국, 러시아, 독일 등)를 얻은 일본은 곧바로 한국을 보호국화 하는 을사늑약을 강행한다(1905).

일본이 조선병합을 목적으로 외교적 술책을 구사할 당시, 고종과 집권당인 민씨 척족세력은 근대사회로 변환되는 격변기에서 서구열강과 일본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외교안보 통치개념은 없이, 오로지 청/러시아 등 외세에 의존하여 왕실과 정권만 보존하려다가 식민지화를 초래하였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하의 한국외교 및 안보가 2017년 정초부터 중국 및 일본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의 국정리더십 공백과 미국 행정부의 교체기에 사드 배치철회와 위안부 소녀상설치 보복 등 외교 안보를 이슈화하여, 한국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안보 및 한미동맹과 직결되는 사드배치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야권을 활용하여 이이제이(以夷制夷)전략으로 사드배치를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일본 편을 든 미국의 바이든 부통령을 지렛대로 삼고 한국을 직접 압박했는데, 이는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가쓰라 다로의 외교술책을 흉내 낸 것이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극동의 전략적 요충지로, 중국은 한반도를(미국, 일본 등) 해양세력이 자국을 겨누는 방아쇠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일본과 미국은 한반도를, 특히 핵과 장거리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과 이를 음성적으로 지원하는 중국이 자국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및 러시아의 푸틴과 같은 스트롱맨의 이해득실 관계가 한반도의 역학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미지수다.

우리가 우려할 점은 포츠머스 강화조약처럼 당사국인 한국이 배제된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미, 중, 일, 러시아의 스트롱맨들이 핵 공갈을 일삼는 북한문제 해결의 틀을 자국이익에 부합되게 만드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핵폭탄과 미사일을 보유한 호전적인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서, 한국경제 및 안보를 맡겨달라는 대선주자들은 지지세력 간 이판사판 대립보다 먼저 한미상호방위조약, 사드배치, 위안부합의, 개성공단 재개 등 현안문제가 스트롱맨들과 맞부딪칠 때 대응할 한반도 생존전략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준엄한 대권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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