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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국차가 잘 닦인 도로를 달릴 날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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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곤 사회부장·취재1팀장
  • 승인 2017.03.08 22:30
  • 댓글 0
김기곤사회부장·취재1팀장

시절이 참 하수상하다.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요즘이다. 국가수반의 자리를 빼내느냐 마느냐의 최종 판결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더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국가존재의 가장 중요한 이유인 안보를 남의 나라 힘을 빌려야 하는 게 대한민국의 실상이다. 지정학적 운명만을 탓하기엔 너무 서글프다. 하지만 현실이니 받아들일 수 밖에. 더욱 기가 찬 것은 이 문제 때문에 또 다른 나라로부터 시달림을 받고 있다. 게다가 한국을 지켜준다는 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을 다시 하자”고 얼음장을 놓고 있다. 협상 후의 경과를 계산해 보니 ‘손해만 봤다’란 결론이 났기 때문이란다. 협정 체결 당시 “한국만 손해 본다”며 ‘결사반대’를 외쳤던 국회의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여튼 소위 글로벌시대로 불리는 21세기가 골목패들의 논리로 돌아가는 것 같다. 비록 전달에 비해 1억 달러가 줄었다지만 그래도 외환보유고 세계 4위국의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최대화두였던 60˜70년대엔 생각지도 못했던 부국(富國)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야생에서 맘껏 뛰놀던 다람쥐까지 잡아 수출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야 말로 상전벽해다. 물론 이게 절로 된 것은 결코 아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국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기업, 특히 제조업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한국의 제조업 환경은 열악해지고 있다. 족쇄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모하게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쫄딱 망한 독일과 일본이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은 제조업이 탄탄하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역시 제조업이 경제성장의 일등공신이다. 헌데 역사책을 읽으면 죽을 고생은 함께 했지만 영광은 나누지 못한 개국공신 얘기가 숱하게 나온다. 지금 우리 제조업이 딱 그 꼴을 당하는 것 같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울산은 한국 제조업의 핵심지역이다. 조선과 자동차, 그리고 석유화학이라는 제조업 트리오가 포진한 울산은 그래서 ‘한국의 산업수도’란 닉네임을 부여받았다. 그런 울산이 지금은 말이 아니다. 호된 시련을 겪은 유화산업은 그동안 절치부심하며 회생의 길을 걷고 있지만, 예단을 하기엔 이르다. 한때 세계 1위였던 현대중공업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정도다. 분사(分社)라는 그럴듯한 말을 쓰지만 사실은 팔다리를 떼어내는 것이나 다름없을 만큼 ‘생존’ 자체에 방점을 찍을 정도로 절박하다. 노조는 노조대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앞날이 걱정이다. 

이런 가운데 그나마 믿을 구석인 자동차는 또 어떤가.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의 취임 일성은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였다. 자국민의 일자리 창출을 첫째로 내세웠다. 이민자로 발전한 나라가 이제는 이민자도 막겠단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나 싶다. 어쨌든 새 대통령의 말에 깜짝 놀란 기업들이 앞다투어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현대차도 예외가 아니다. “그 돈을 한국에 투자하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대롱으로 세상을 보는 관견(管見)이다. 기업만큼 계산이 빠른 집단도 없다. 그런 기업이 투자를 하겠다고 한 것은 살기 위해서다. 지정학적 운명 못지않게 수출 없이 살 수 없는 나라의 또 다른 숙명이다.

IT산업과 함께 자동차산업은 급변의 소용돌이에 들어가 있다. ‘대담한 예언’이라는 전제 아래 “향후 몇 년 안에 자동차산업은 상상 이상의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이런 급변을 못 느끼는 것 같다는 안타까움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출범 29년에 사상최대 파업을 했던 작년의 일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런데도 아직 양이 안 찼는지 올 협상을 앞두고 벌써부터 얼음장을 놓고 있다. 마치 우물가에 놀면서 위험을 못 느끼는 아이 같다면 지나친 말일까. 더욱이 작년과 달리 올해는 임금과 함께 단체협약도 함께 다루는 소위 ‘임단협’을 하는 해다. 노조 입장에서는 트집을 잡을 게 더 많아 호재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내 1위 기업의 자존심을 구긴 내수시장 점유율 하락을 비롯해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을 생각한다면 투쟁가를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여겨야 하지 않을까.

지난 달 10일 서울고법에서는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 대해 간접공정과 2차 협력업체 파견근로자까지 현대차 직원으로 간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이 나기 바쁘게 현대차 일부 직원들은 “현실을 모르는 탁상 판결”이라며 자신들의 고용불안을 제기했다. 자신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현실감각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노조 지도부를 비롯한 조합원 상당수는 아직도 봄꿈(春夢)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시중의 여론이다. 한국 자동차가 언제쯤 잘 닦인 도로를 달릴 수 있을까. 위기불감증이란 고약한 병만 고치면 길이 없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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