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곤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

올 여름은 무척이나 바빴고 바쁜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과제 제안서 작성과 발표에 여름 휴가는 커녕 학생 지도도 여의치 않았다. 체감 온도가 실제 온도와 다른 것처럼 시간도 체감 시간과 실제 시간이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 느껴 보았을 터.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가 번득거리며 지나칠 때, 애써 그 섬광의 속도를 정지시키고, 작은 새에 깃과 관을 달아 주작으로 변모시키다 보면, 한 시간 정도는 그저 찰나로 지나간다. 반면에 아침에 일어나 어깨에 온 몸의 무게를 싣고 코어 근육에 힘을 주어 플랭크 동작을 하다 보면 고작 30초가 영겁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체감 시간을 시간의 기준으로 삼아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면 그녀와 나의 만남은 차라리 운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인격적 실체의 주기성에 시간의 기준을 의지한다. 태양의 고도나 좁은 구멍을 통해 떨어지는 물 혹은 모래의 흐름은 우리에게 공통된 시간 기준을 제시했다. 태양은 하나 뿐이며, 태화강의 물과 해운대의 모래는 누구의 소유이냐에 관계 없이 같기 때문에, 독립 개체의 다양성을 무시할 수 있어 공통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값 비싼 기계식 손목 시계에 대한 심미적인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신의 물리적 시간의 길이는 수정의 진동수에 의해 결정될 공산이 크다. 수정은 특정 전압에서 1초에 무려 3만2,768번을 진동하고, 시계의 회로는 3만2,768번의 진동수를 인식할 때마다 초침을 한 칸 움직인다. 그래서 수정 진동자 시계의 초침은 정밀한 톱니바퀴를 이용하는 기계식에 비해 딱딱 끊기는 감이 있다. 

1초 정의는 뜻밖에도 바뀌어 왔다. 1956년까지는 지구 자전 주기인 하루의 8만6,400분의 1로 정의됐다. 그러나 지구 자전 속도는 변한다. 이러한 까닭에 자전 주기보다 긴 지구 공전 주기를 기준으로 삼아 1초는 1년의 3,155만6926.9747분의 1로 재정의되었다. 그러나 공전 주기 역시 절대 불변의 값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구의 운행이란 거대 시스템의 긴 시간을 쪼개 1초를 정의하는 대신, 이번엔 미시 세계의 짧은 시간에 눈길을 돌렸다. 1967년 도량형 관련 국제기구가 정의한 바에 따르면, 1초는 세슘 원자가 91억9,263만1,770번 진동할 때 걸리는 시간이다. 

지구의 운동이나 원자의 진동처럼 매우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생명체도 그 나름의 생체 시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제법 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한다든가, 식물마다 꽃을 피우는 시기가 다르다든가 하는 것들이 바로 그 증거다. 포유류의 생체 시계는 대뇌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시상 (시신경과 관련된 받침대라는 뜻)의 아래쪽 시상하부에 위치한다. 시상하부는 후각을 제외한 대뇌로 들어가는 모든 감각정보 (대체로 시각정보)의 이동통로인데, 이 중 시신경 교차가 일어나는 곳의 윗부분에 위치한 신경세포들의 뭉치가 수면과 기상의 주기성을 관장한다. 생체 시계가 시신경이 들어오는 통로에 위치하는 까닭은 우리의 시계가 빛을 인식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각적 인식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체감 시간은 수면/기상의 주기성과 다를 것이다. 한 학생이 촉매 입자의 뭉침 현상을 막기 위해 지지체인 그래핀에 구멍을 뚫어 그 안에 촉매를 집어 넣고 반응을 일으킨 실험 결과를 가져왔다. 촉매가 뭉치지 않은 것이야 예상대로지만, 촉매의 모양이 공 모양에서 별 모양으로 바뀌었다. 왜 일까? 내 뇌의 신경세포는 점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이웃 신경세포에게 신호를 전달하며 외친다. 이유를 찾아보자. 너는 기억의 도서관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봐. 그리고 너는 뭉침 현상을 일으키는 원리와 지금의 실험 결과를 비교해보라고. 대뇌 전반에 걸쳐 나의 신경 세포들은 온통 점화되고, 시간의 경과를 체크하는 “지루해”라는 신경세포는 주 업무 이외의 일에 동원된다. 한 시간에 열 번씩 시간을 체크했던 지루해 씨는 이제 가까스로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시간을 체크할 수 있다. 이리하여 나는 한 시간의 물리적 시간 경과를 그것의 십 분의 일인 육 분으로 체감하게 된다. 뭐 대강 이런 식으로 체감 시간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런지?

시론(時論)이라는 것이 본시 때에 대한 의견 즉 사전적으로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시사에 대한 평론을 뜻 한다. 그러나 이번 시론에서는 시사(時事)가 아닌 시(時)에 대한 잡설을 풀어 보았다. 1919년으로 정부 시작점을 명확히 하고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예우를 두텁게 한 탓에 맘이 따뜻해지고 한량스러워진 탓이다.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 그리고 4·3 제주학살,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 광주 민주화 운동과 같이 관과 군의 온당치 않은 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께 국가가 예의를 차리는 일은 아픔의 체감 시간을 줄이고 지향해야 할 국가적 가치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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