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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칼럼] 성냥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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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7.09.14 22:30
  • 댓글 0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치마에 불이 붙었네…’ 이 노래는 1960~70년대 젊은이들이 모인 곳은 물론  군대에서 병사들이 워낙 많이 불러 한 때 군가(軍歌)로 착각될 정도였다.


190년전인 1827년 영국의 약사 존 워커가 성냥을 발명해 라틴어 ‘루시퍼(Lucifer, 빛을 가져오는 사람)’라는 이름을 붙였다. 루시퍼 성냥을 표면이 꺼칠꺼칠한 종이 사이에 넣고 잡아당기면 화학처리를 한 그 끝에 불이 붙었다. 성냥공장 노동자들이 뼈가 상하고 일그러져 죽음에 이르는 인골저(燐骨疽) 병에 걸렸다. 불꽃을 일으키는 백린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이후 독성을 줄인 성냥이 개발됐으며 우리나라에는 1880년 개화승 이동인이 일본에서 처음 가져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천에 성냥공장~’ 노래처럼 1886년 제물포에 첫 성냥공장이 들어섰으며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전국에 300여개 공장이 가동됐을 정도로 성냥산업이 호황을 이뤘다. 유엔(UN)표, 아리랑표, 비사표, 기린표, 향로표 등이 당시 대표 상표였다.


마지막 남은 성냥공장인 김해 경남산업공사(기린표)가 문을 닫게 됐다. 1948년 설립된 이 공장은 1970년대 법인세 최고 납부 중소기업으로 직원이 300명에 이를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1980년대 가스라이터 대중화 이후 국내 성냥공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2014년 경북 의성의 성광성냥공업사가 휴업에 들어가면서 경남산업공사만 홀로 남았다. 이후 30년 넘게 근무한 60·70대 직원들이 커피숍 등에서 간간히 주문한 성냥을 만들면서 버텼으나 세월의 변화를 따라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김해시는 성냥박물관을 만들어 경남산업공사가 기증한 성냥제조기계와 회사 간판 등을 보존·전시키로 했다. 2차대전 중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 국민들에게 ‘나는 돌아갈 것이다’라는 약속을 알리기 위해 400만 갑의 성냥을 공중투하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성냥은 죽지않고 사라질 뿐이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 문의

김병길 주필

기사 수정 :   2017-09-14 20:52   김지은 기자
입력.편집 :   2017-09-14 20:51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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