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가을빛으로 잘 익은 감을 보며, 처음엔 그저 참 먹음직스럽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과일칼에 얇게 풀어지는 주황 감 껍질을 보다가 잠시 칼질 멈추었지요.
내가 깎고 있는 것은 감이 아니라, 가을 속의 노을이었습니다.

풀어낸 노을은 강과 더불어 흐르고, 억새 산정 넘으며 바람이 빗어 넘긴 아슴한 세월이 쟁쟁한 투명으로 얼비치는 시간 앞에서, 잠시 억새와 함께 고개 숙여 기도를 올렸습니다.

산촌 서정 속 호올로 익은 감이 절로 떨어질 때, 가을 인정의 눈시울도 하늘과 한마음을 이루며 붉게 물들고 있었답니다.

 

◆ 詩이야기 : 결실을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다. 호올로 익고 절로 떨어지는 가을 서정의 순리 앞에서, 인정의 눈시울 같은 노을을 본다.
◆ 약력 : 김춘남 시인은 200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200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했다. 2014년 부산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동시집「앗,앗,앗」 발간했다. 현재 부산아동문학인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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