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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에세이 칼럼] 졸기(卒記), 공직자들의 사후(死後)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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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7.10.25 22:30
  • 댓글 0

공직에 몸담았던 고인의 생애 기록해
뒤돌아보게한 ‘조선왕조실록’의 지혜
사후 악명(惡名) 남긴 사람 훨씬 많아

‘현대판 양반(?)’이라는 수많은 공직자
행적 기록 안되니 오만·부패 더욱 심해
고위직 일수록 후배들에 모범 보여야

 

김병길 주필

사업을 하는 어느 남편이 20억 원짜리 생명보험 7개를 들어놓고 과로로 죽었다.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가 끝난 다음 날, 부인이 남편 사진을 보면서 한 말 “당신은 아주 멋진 놈이야.”
이 소리를 들은 옆집 남편, 그날부터 헬스클럽에 가서 열심히 운동하면서 아프지도 않으니, 마누라가 속으로 내뱉은 말, “어유~질긴놈.”


한 때 유행했던 유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위대한 선수는 번호를 남긴다.’ 위대한 기록을 남긴 운동선수가 은퇴하면 그 선수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고 영원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이제 프로 스포츠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야구선수 이승엽의 36번 등 번호는 은퇴(2017년 10월 3일) 이후 삼성 라이온스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명예로운 삶을 살았음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오명(汚名)이나 악명(惡名)을 남기겠다는 염원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모순을 안고 있는 말이다.
불행하게도 죽은 뒤 명예로운 이름을 남긴 사람보다 오명이나 악명을 남긴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오명을 남긴 사람들은 때 묻고 치졸한 삶을 살았으면서도 자신의 삶이 얼마나 치졸했는지, 또 얼마나 때가 묻고 부패했는지에 대한 판단을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또 일단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짧은 생각 탓으로 자신의 너절하게 더럽혀진 삶이 그 오명과 함께 후세에 전해질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졸기(卒記)’는 ‘죽음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유네스코가 ‘세계의 기록유산’으로 선정해 인류의 보배임을 인정하는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은 자랑스러운 우리 유산이다.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 날짜의「조선왕조실록」에 ‘졸기’를 적어서 고인의 생애를 뒤돌아보게 하였다. 역사인식이 투철하지 못한 민족에게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정부에서 편찬하는 공식 문서에 공직에 관여한 한 인간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것이 그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듯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가. 물론 그 기록은 사관(史官)들이 쓴 것이지만, 또 다른 사관들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서는 정부의 공식 문서인 ‘실록’에 등재될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에 ‘졸기’라는 기사로 등재된 인물들은 그 기사가 다소간 비판적이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대단한 영광일 것임이 분명하다. 문자 그대로 죽어서 이름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관에 의해 씌어진 ‘졸기’가 또 다른 사관들에 의해 검증되었다는 역사인식의 지엄함이 소름끼치게 한다. 다시 말해 ‘승자의 기록’이라는 시각을 사관들 스스로가 거부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공직에 봉사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봉사한다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오만하고 방자하고 또 부패한 사람들의 행적도 수없이 많다.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관보(官報)와 같은 정부의 공식 문서에 그들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졸기’를 기록한다면 요즘 사람들은 인권 침해라고 거부할지도 모른다.


역사 앞에서 경건하지 못한 그런 오만한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한 것이 요즈음이다. 고위 공직자의 행적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후세에 남기기 위해 기록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록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조선왕조실록」의 정신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교훈이다.


오늘날 한국의 공무원·교사·공기업 직원 등 공공 부문 정규직은 ‘현대판 양반(?)’으로 등극한지 오래다. 청년 수십만 명이 이 시각에도 기약없는 시간을 걸고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일 하나 더 하는 것보다는 일 하나를 줄이는 게 낫다(多一事不如少一事)’는 공무원 습성을 비판한 고사도 있다.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에게 전생을 비춰보는 커다란 거울이 있다고 했다. 그 앞에 서기만 하면 그 사람이 평생 어떻게 살아왔는지 환히 볼 수 있다. 그 거울이 불교에서 말하는 업경대(業鏡臺)다. 고위직일수록 철저한 자기 성찰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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