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무책임한 행동 반성하고
민주주의·공화정 복원 계기 삼아야
‘혁명’ 등 특정 단어로 정의하면 위험

우르르 휩쓸려가는 동조(同調) 현상
구성원 다양화 안되면 획일 못벗어나
어느 촛불도 독점 대상 아니란 얘기

 

김병길 주필

1997년 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한 후 20여 년간 보수 진영을 대표했지만 강제로 출당되는 처지가 됐다. 한국당은 국정 농단 사태가 발생한 지 약 1년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치적 절연(絶緣)을 선언했다.

‘촛불’ 1년이 지난 지금 ‘초라한 보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 장면을 더 보면 박근혜 탄핵으로 조기에 대선을 치르면서 한나라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졌다.
뱀처럼 머리와 꼬리가 서로 다투다가 두 토막이 난 모양새다. 당시 여론 조사를 보면 한나라당이 똘똘 뭉쳐도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누르기가 버거운 상황이었다. 민주 국가에서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잃으면 권력을 잡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한국에서 ‘촛불’은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는 사회적 함의를 갖게 됐다. 누군가는 촛불을 ‘광장 민주주의’와 연결시켰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화’라고 말했다. 또 혹자는 ‘특정 세력의 정치적 도구’라고도 말했다.

‘촛불집회’는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4월 29일까지 주말마다 계속됐다. 총 23회에 걸쳐 1,700만 명(주최측 주장)의 시민이 참여했다. 지난 10월 29일 첫 집회가 열린 지 1년을 맞았다. 

촛불은 어느 한 사람, 한 세력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촛불 광장에는 촛불을 든 사람, 질서 유지를 위해 밤을 지세운 이들, 이를 지켜 보고 기록한 사람이 있었다. 그저 멀리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탄핵 광장의 안과 밖」(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서복경 연구원)에서는 “세계사를 돌아보면 프랑스 오월혁명처럼 무언가를 향한 집단적 열정이 폭발하는 시기가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그 타이밍을 막 지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시기가 지나면 사람들은 자신이 이전에 살았던 세상에 대한 기억의 일부를 지운다. 그렇게 생각의 도약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촛불집회를 새로운 정치현상으로 관찰·연구한 사람은 촛불집회를 ‘혁명’ 등 특정 단어로 정의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그 속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때 모두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촛불 참여는 선(善), 불참은 악(惡)으로 보는 구도도 있었다. 정치 참여가 선악의 개념이 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또 현 정부가 많은 역량을 과거 청산에 쏟고 있는게 그것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은 충고와 비판을 수용하지 않아 일어난 것이다. 이런 부분을 현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민들은 헌법 1조를 가사로 노래를 부르며 우리가 주권자라고 선언했다. 촛불시민혁명은 분명 위대한 일이지만 대의민주주의와 정치적 책임성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지 직접 민주주의만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제도권의 무책임한 행동을 반성하고 민주주의와 공화정 복원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촛불은 ‘내밀한 야등(夜燈)’이자 사색에 잠긴 이마를 비추는 ‘백지(白紙)의 별’이다. 동시에 촛불은 가치와 반(反)가치의 결투장’이다. 1주년 ‘촛불 집회’에서는 “적폐 청산과 사회 대개혁을 위해 촛불은 계속 되어야 한다” 했다.

인터넷과 SNS가 앞서가면서 모두가 한 방향으로 우르르 휩쓸려 가는 동조(同調) 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들린다. 자기 주관을 갖지 못한 채 남들이 하는 말이나 집단의 생각에 너무 쉽게 쏠리고 있다.

구성원의 다양화가 안 이뤄지면 획일적 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 끼리끼리 어울려 똑같이 생각하니까 현실 상황에 대해 자기 잣대로만 해석하게 된다.

세균을 연구한 학자의 말이다. 세균 집단을 보면 번식을 잘하는 세균과 번식을 거의 하지 않고 버티는 세균이 섞여 있다. 여기에 항생제가 투입되면 번식 중인 세균은 모두 죽지만 번식을 멈추고 있는 세균들은 살아 남는다. 이들 덕분에 집단 멸종을 면한다. 한 집단을 구성하는 개체들이 동일한 형질을 갖고 있으면 환경 변화에 모두 멸종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생존 연속이 가능해야 종(種)의 진화도 기대할 수 있다.

촛불 1주년을 보내면서 ‘멀리서 본 촛불’은 어느 촛불도 독점의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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