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무너지는 조선업 사내협력업체 
<상>1년만에 업체수 ‘반토막’…고통받는 노동자

現重 사내협력사 작년초 300여곳→올해 9월말 150여곳
체임 대비 원청 보관 ‘보증금’도 자금난 호소 업체에 환급
임금·퇴직금 체불 다반사…정부 ‘체당금’으론 역부족

가라앉은 조선업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바닥인 줄 알았더니 내려갈 곳이 더 남았더라”는 푸념이 들려온다. 간간히 수주 소식이 들려오지만 현장은 여전히 찬바람이다. 더이상 버티지 못한 협력업체들이 꺾이고,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호소만 짙어지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지원 정책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고통만 더하는 실정이다. 폐업 업체들은 대기업과의 불공정한 관계를 토로한다. 협력업체와 그 노동자가 겪는 고통의 실상과 이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조선업 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초부터 1년이 넘는 동안 울산지역의 사내협력업체 절반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 초 300여곳이던 현대중공업 등록 사내협력업체는 올 9월 말 기준으로 150여곳으로 감소했다. 올 4월 사업 분할로 현대일렉트릭과 현대건설기계의 사내협력업체가 집계에서 제외되긴 했지만 그 규모는 20여곳에 불과하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현대중공업의 사내협력업체는 반토막이 난 셈이다.

현대미포조선도 지난해 초 90여곳이었지만, 같은 기간 동안 66곳까지 줄어들었다.

특히 해양플랜트 분야의 경우는 심각한 수준이다. 신규 수주 없이 아랍에미리트(UAE) 나르스 공사 1기만 남은 해양플랜트 사업은 사실상 내년 3월 말이면 일감은 모두 바닥난다. 최근 해양플랜트의 협력업체들은 일주일에 한곳씩 사라지는 추세다.

협력업체들의 도미노 폐업은 오랫동안 그곳에서 근무했던 노동자들의 고통이 되고 있다.

업체 대다수가 자금난으로 폐업 수순을 밟으면서 노동자들은 당장 임금과 퇴직금 걱정이 앞서는 처지다. 본래 대기업의 사내협력업체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체불 임금과 같은 상황에 대비해 일정 금액을 ‘보증금’ 형태로 원청에 보관하도록 한다. 하지만 최근 업계 불황이 계속되면서 ‘보증금’ 제도는 무의미해지고 있다. 협력업체가 어려움을 호소하면 ‘보증금’을 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푼이 아쉬운 협력업체의 사정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게 원청 측의 설명이다.

이미 바닥난 보증금에, 남은 기성금은 한달치 월급으로도 빠듯한 상황에서 막막해지는 것은 노동자들이다. 실제 최근 폐업한 한 업체의 경우 퇴직금을 받지 못한 전 직원들과 당장 월급을 걱정하는 현 직원들이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가 대신 임금을 지급해주는 ‘체당금’ 제도가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회사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A씨는 “조선업 경기가 한창 좋았던 시절이라, 협력업체라도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이 많았고, 회사가 잘못돼 문을 닫더라도 다른 회사로 고용승계가 이뤄졌다”며 “당장 받을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고, 옮겨갈 회사도 이젠 얼마 없어서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면서 협력업체들에 ‘4대 보험료’ 등 세금 징수를 유예하는 지원책을 내놨는데, 이도 ‘언발에 오줌누는 꼴’이었다는 지적이다. 당장의 고비만 넘겼을 뿐, 폐업이 속출하면서 미납된 보험료의 피해는 노동자의 몫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 납부를 미뤄온 업체들은 매달 노동자 개인에게 보험료가 공제된 월급을 지급하면서도, 대부분 이를 별도로 납부하지도, 적립하지도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월 기준으로 울산지역 협력업체의 4대 보험료 체납액은 170억원을 넘어섰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연금’이다. 납부기간에 따라 수령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업체가 폐업하면서 보험료 징수 대상이 사라지는데, 사업주가 그 부담을 떠안기는 하지만, 파산 등 절차를 밟으면 사실상 징수가 불가능하다.

국민연금의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노동자 개인이 자신의 기여분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수개월치 미납금액이 적지 않은데다, 이미 월급에서 공제당한 노동자 개인 입장에서는 이중으로 납부하는 모양새가 된다.

한 노동자는 “앞으로 일할 날이 많은 사람들이야 미납된 기간을 버리는 셈 친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한두달이 아까운 처지”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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