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표면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13개의 크고 작은 조각들 이어 붙여
압력 이길 수 없을 때는 스트레스 분출

기존 자료·경험 있는 전문가 태부족
전국 활성단층지도 2041년 돼야 완성
이번 지진에도 원인분석은 지지부진

 

김병길 주필

“지진이 나면 가스레인지를 꺼야 할까요, 테이블 밑으로 피해야 할까요?” 일본 도쿄 방재센터의 지진이 났을 때 ‘OX퀴즈’ 문제다. 우리나라 견학생들은 일제히 “불부터 꺼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방재센터 직원은 “진도 5 이상이면 대부분 건물에 가스 자동차단 기능이 있어서 몸부터 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규모 5.4의 지진이 실제 진동 이상으로 한국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15일 한국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과 관련해 보도한 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번 지진의 위력이나 피해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규모 지진이 거의 없어 재난 대비책이 미흡한 한국의 현실을 꼬집고 있다.

이번 지진을 일본의 지진 진도(특정 장소에서 감지되는 진동의 세기) 기준으로 분류하면 진도 3~4 정도였다는 것이 요미우리신문의 분석이다. 진도 3은 ‘가옥이 흔들리고, 물건이 떨어지는’ 정도이고 진도 4는 ‘가옥이 심하게 흔들리고 그릇에 담긴 물이 넘쳐 흐르는’ 수준이다. 

2011년 규모 9, 최대 진도 7(대규모 가옥 파괴, 산사태와 단층 발생)을 기록했던 동일본 대지진을 비롯해 초대형 지진을 수차례 겪었던 일본은 그만큼 지진이나 해일에 대한 대비가 철저해 진도 3~4 정도의 지진으로는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포항 지진으로 전국이 혼란에 빠진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확한 원인 분석 조차 나오지 않아 국민 불안을 해소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경주 지진을 겪고서야 5년간 493억원을 투자해 양산단층을 포함한 부산 울산 등 동남권 단층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전국 활성 단층 지도는 2041년에야 완성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기존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 현재로서는 한반도의 지진 추세를 파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선진국 과학자들은 정확한 지진 재해 분석을 위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이 연구한 값을 내놓고 합리적인 답을 찾아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진 피해를 예측하려면 규모 4 지진이 100번 일어날 때 규모 5와 규모 6은 몇 번 일어나는지를 가늠하는 값 등 다양한 연구 결과가 필요하다.

국내에는 이런 값을 내놓을 수 있는 학자가 채 10명도 되지 않는다. 경험 있는 원로 교수들이 잇달아 은퇴하고 있는 데다 뒤를 이을 30~40대 학자들이 턱없이 부족하고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다. 

땅도 스트레스(응력, stress)를 받는다. 누군가 세게 건드리면 한 번에 욱하면서 터지기도 하고, 참고 참다 쌓인 응어리가 시간이 흘러 마침내 폭발하기도 한다. 땅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하면 누적된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것이 지진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멀쩡하게 있던 땅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지구 내부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구 표면은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보기보다 위태롭다. 하나의 땅덩어리가 이어져 있는게 아니라 13개의 크고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인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지각이 만나거나 맞물리는 곳에서는 응력이 발생하고 더 이상 압력을 이길 수 없을 때 부러진다. 이때 생긴 파동은 지표면까지 전달되면서 지진이 발생한다. 지진은 이렇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조각들이 맞부딪치는 경계에서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는 땅 속 사정을 잘 모르고 있다보니 지진이 일어나면 전문가들조차 엇갈린 분석을 내놓을 때가 많다. 기상청과 한국지진연구원은 지난해 경주 지진이 양산 단층에서 갈라져 나온 무명단층(이름이 아직 붙지 않은 단층)에서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구과학 분야 전문가들은 지류 단층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단층일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번 포항 지진을 두고도 일부 학자는 경주 지진 여파라고 보는 반면 또 다른 학자들은 경주 지진을 원인으로 보기 힘들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포항 지진에서 다시 확인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작은 규모라도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중국이 속한 유라시아판처럼 육지 비중이 높은 대륙판 중심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대부분이 진원의 깊이가 얕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니 우리가 모르고 있는 ‘땅속의 스트레스’ 폭발이 갈수록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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