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재난 때마다 ‘특단 대책’…시간 지나면 유야무야
천길 제방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뜻 ‘제궤의혈’ 명심
안전불감증 퇴치하고 더욱 견고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최은진 세무법인 충정 울산지사 대표세무사

‘삶에 대한 철학’이나 ‘업무에 임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역사를 돌아보며, 또 훌륭한 서책을 읽으며 현자(賢者)의 가르침을 본받거나 그것을 거울삼아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로 삼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한비자의 ‘유로(喩老)’ 편에 나오는 ‘제궤의혈(堤潰蟻穴)’이라는 문구도 그 중 하나다. 이는 천장지제궤자의혈(千丈之堤潰自蟻穴)의 줄인 말로 제궤의공(堤潰蟻孔), 또는 의혈제궤(蟻穴堤潰)라고도 한다. ‘천 길이나 되는 제방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뜻이다. 아무리 큰 사건도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미세한 결함이라도 미리 손을 쓰지 않으면 일 전체를 망칠 수도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지난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 지진으로 인근 지역의 주요 도시가 충격에 빠졌었다. 지난해 9월의 경주 지진보다는 다소 약했지만 진앙이 상대적으로 얕았기 때문에 피해 규모는 훨씬 컸다는 소식이다. 게다가 강진 이후 계속된 수십 차례 여진에 겁을 먹은 대부분 시민은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라 한다.

11월 27일 현재 포항 지진의 피해액은 990억 원을 넘었다고 한다. 인명 피해는 모두 91명이며, 9명은 아직 입원해 있고, 1,200여 명의 이재민은 여전히 학교와 복지시설 등에 대피해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활약과 지원이 더욱 요구되는 이유다. 
지진 피해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부의 립 서비스가 아니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일 것이다. 경주 지진이 발생한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지진 관련 올해 예산 250억 원의 77%(194억 원)를 삭감했기에 하는 말이다. 올해도 행정안전부가 신청한 내진보강예산 335억 원 중에 기재부가 반영한 액수는 20억 원뿐이라고 한다. 지금껏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특단의 대책을 세운다고 떠들다가 시간이 지나면 없던 일로 해버리는 사례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정책을 입안하는 책임있는 자들의 인식이 이 정도니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계획하고 있는 포항지진 대책이 성사될 때까지 국민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뉴스를 보니 개탄스런 일도 여전하다. 아직까지 지진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데도 포항 곳곳에 투기꾼들이 몰려들고 있단다. 기울어진 아파트를 빠져 나온 이재민들이 여전히 고통 속에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곳의 분양권을 노린 투기꾼들이 시세차익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목숨을 담보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참 많다.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한번쯤 되돌아 볼 일이다. 

 천 길이나 되는 제방도 개미구멍 하나로 무너지듯 사소한 일이라고 자칫 방심하면 우리 사회 전체가 붕괴되고 만다. “털끝만큼 벌어질 때 조심하지 않으면 천리만리 틀어진다”는 조선시대 학자 주세붕의 말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사회안전망을 더욱 견고히 구축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퇴치하는 일이 시급하다.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본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은 언제나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바쁜 연말이지만 꼭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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