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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칼럼] 흔해빠진 ‘괴물’
17면 기사보기 신문보기 JPG / PDF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8.02.08 22:30
  • 댓글 0

 

“En 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 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계간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발표한 총 7연 27행의 시 ‘괴물’이 폭발했다. 


시 ‘괴물’은 원로 유명시인을 괴물로 지칭해 사실상 실명 비판했다. 여성 후배의 몸을 함부로 만진다는 유명시인을 ‘En 선생’으로 칭하고, ‘100권의 시집을 펴낸’이나 노벨문학상 후보를 뜻하는 ‘노털상 후보’로 표현했다.

최시인은 “문단과 사회에 만연한 우상 숭배를 풍자한 시”라며 “문학작품으로만 봐달라”고 했다. 그러나 미투(Me too) 바람을 타고 ‘시(詩)로 쓴 미투’로 회자되고 있다. 생방송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최시인은 “그 원로 시인은 상습범”이며 (문단 내)성희롱 피해자는 셀 수 없이 많다”고 거듭 폭로했다. ‘En’이라는 원로 시인은 신문사와의 통화에서 “할 말이 없다”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문단 내 성폭력’은 2016년 10월 떠들썩했다가 수그러졌으나 이번엔 시 ‘괴물’로 재점화 됐다. 그동안 문학계에서 원로시인 En의 ‘손버릇’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 와중에 새로 뽑은 한국시인협회 회장이 과거 성추문 전력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흔해빠진 괴물은 이제 ‘괴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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