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용 백합초 교사

‘성추행’을 ‘로맨스’로 포장한 문화콘텐츠 만연한 대한민국 
그동안 “당연하다”며 경시한 수준 낮은 성적인식의 결과물
이번 ‘미투 운동’이 성숙한 젠더 감수성 만드는 계기 되길

 

약 12년 전, 박해일, 강혜정 주연의 영화 ‘연애의 목적’가 개봉했다. 필자도 20대 때 이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박해일이 연기한 고등학교 영어 선생인 유림이 교생 실습을 나온 연상의 교생 홍(강혜정 분)에게 스킨십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들이대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두 주인공의 연기도 대단했고, 코믹한 부분도 있었고, 무엇보다 스토리가 탄탄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국내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박해일은 교생에게 집적대는 선생을 아주 능청스럽게 연기했고, 강혜정은 좋은 듯 싫은 듯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소심한 여자를 귀엽게 연기했다. 

지금도 포털 사이트의 영화 소개란에는 ‘달콤한 로맨스’로 소개되고 있다. 이 영화를 두고 개봉 후 인터넷 상에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미있는 로맨스 영화와 직장 내 성추행을 미화하는 영화로 보는 시선의 충돌이었다. 그 당시 영화에 대한 호평은, 성추행을 미화했다는 혐의를 덮기에 충분했다. 

 필자도 께름칙한 느낌은 있었지만, 해피엔딩에 가까운 결말 때문에, 과정이야 어떻든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했다는 이유로, 발칙하고 재미있는 영화로 평가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필자 역시 그동안 많은 미디어가 했던 거짓말들에 속고 있었고, 젠더 감수성이 그리 높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젠더 감수성이란 ‘가부장제로부터 발생하는 성별 불평등과 젠더 문제들에 대해 감지하는 능력’(Daum백과)이라고 정의된다. 

 법학자 김두식이 쓴 인권 이야기「불편해도 괜찮아」에는 영화나 드라마가 성희롱 내지 성추행을 어떻게 아름다운 로맨스로 미화하는지를 지적한다. 잘생기고 정의로운 남자 주인공이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도 않고, 여자 주인공을 벽으로 밀어붙이고 키스를 하는 장면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미화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영상미로 포장하더라도, 아무리 정의롭고 착한 주인공이 하는 행동이라도,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않고 하는 모든 신체 접촉은 성추행이라는 인식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면 이런 장면은 쉽게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가 드라마에 반영된 우리의 젠더 감수성에 대해 지적하는 글을 SNS에 올리자, 외국에 거주하는 SNS 지인이,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는 외국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해줬다. 부당한 요구를 하는 상사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여주인공 앞에 용감한 남주인공이 나타난다. 남자는 탈출하듯 여자의 손목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온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접하는 익숙한 장면이다. 이 장면을 두고 외국인들은 “말로 하면 되는데 왜 터치를 하느냐” 부터 시작해서 “왜 힘으로 잡아끄느냐” “이상한 일이다” 하면서 게시판이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와 그들의 젠더 감수성의 차이이다. 우리가 아무 불편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누군가는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젠더 감수성은 불편한 시선을 만들어낸다. 

 지금까지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문화 컨텐츠가 우리의 젠더 감수성을 무디게 만들었고, 또 반대로 미디어는 우리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반영해 컨텐츠를 제작하면서 악순환이 지속돼 왔다. ‘미투 운동’을 통해 연일 드러나고 있는 부끄러운 남자들의 만행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수준 낮은 성적 인식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가져왔던 그 빈약한 인권 의식이 잉태한 부산물인지도. 

 초등 고학년쯤 되면 많은 아이들이 인기 있는 드라마는 다 찾아본다. 우선은 드라마를 잘 만들어야 하겠지만, 최소한 잘못된 성적 인식을 미화하는 장면이 나올 경우, 어른들이 이를 지적해줄 수 있어야 한다. 어른이 젠더 감수성을 갖추고 있어야 아이들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서 옳고 그름의 정도가 달라진 게 아니다.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그때도 안 되고 지금도 안 되는 것이지만, 다만 그때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지키기엔 너무 무지했고 힘이 있는 사람들에겐 더 관대했을 뿐이다. 지금 부는 미투의 바람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젠더 감수성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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