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장미
입술이 새빨간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손톱이 긴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뾰족 구두를 신은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녹슨 시간의 철조망을 아슬아슬 건너고 있는
아버지의 무수한 여자들

계절의 여왕 5월! 여왕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다가서는 장미.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보드라운 향기에 촉촉이 젖다보면 마치 요부(妖婦)에 홀리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특히 장미는 상업적, 혹은 문학 속에서도 아름다운 하모니의 양산(量産) 보다는 팜므파탈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각인돼 왔다. 한창 잘 나가던 때의 아버지. 누가 감히 산도 휙휙 요절내던 태풍을 잠재울 수 있었겠는가. 그러한 발목을 낚아채던 여자들이 지금 아슬아슬 녹슨 시간의 철조망을 건너고 있다니….
● 시인 이화은(李和銀·1947년~ ). 경북 경산 진량 출생. 인천교육대학교 및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창과 졸업. 1991년 「월간문학신인작품상」 당선으로 문단 데뷔. 시집 <이 시대의 이별법> <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 <절정을 복사하다> <미간> 등. ‘시와시학상’ 수상. 육군사관학교 국문과 교수 및 포엠토피아 편집주간 역임. 현재 ‘이화은 시창작 교실’ 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