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2017년 5월 23일 박근혜 첫 재판
2018년 5월 23일 이명박 첫 재판

취임 1년 문재인 지지율 고공행진
역지사지(易地思之) 열린자세 필요
‘소통부재’ 일방적 독선이 비극 불러

 

김병길 주필

초대 대통령 고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대통령 이후, 문재인 대통령 사이에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등 6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5·18 광주사태와 관련해 피소된 상태이고 노태우 대통령은 병석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저승에,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2주일째였던 2017년 5월 23일은 역대 3명의 대통령에게 특이한 날이었다. 그날 오전 9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지 53일만에 열린 첫 재판에 피고인의 모습을 드러냈다. 수갑을 찬 양손을 모은 채 호송차에서 내린 수척한 얼굴의 박 전 대통령은 시선을 떨구고 법정으로 향했다.

남색 정장의 왼쪽 가슴에 수감번호 ‘503’이 찍힌 배지를 달고 있었다. 구치소에서 구입한 머리핀 4개로 만든 ‘올림머리’ 곳곳엔 흰머리칼이 비쳤다. 예전의 그 머리 스타일을 고수했지만 서툴게 만진 흔적이 역력했다. “무직입니다.”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선 박 전 대통령이 재판부 인정신문에서 직업을 묻는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이었다.

5시간 뒤인 2017년 5월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은 추모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넘실대는 노란풍선 너머로 신임 문재인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나서자 추모객들은 ‘문재인’을 연호하며 둘러쌌다.

눈물과 애도 속에 진행된 추도식은 문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박수와 환호로 바뀌었다. 8주기였으며 ‘노(盧)의 남자’ 문재인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맞은 첫 기일(忌日)이다. 말 그대로 ‘세상을 얻고’ 나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았으니 회환이 몰려온 시간이었다.

8년전 노 대통령이 극단의 선택을 한 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봉하마을로 문상을 갔다. 당시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질서 유지가 어렵다’며 문상을 거절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뒤 박근혜는 대선 당선 때까지 승승장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날개를 달았다. 노무현을 잃은 문재인은 낙선의 쓴맛을 봐야 했다.

하지만 저세상에서 8주기를 맞은 노 전 대통령은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정치적으로 복귀한 셈이 됐다.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노 전 대통령의 과거는 ‘노무현의 꿈’으로 다시 태어났다. 문재인은 꿈에 그리던 대통령 당선 신고를 추도식에서 하게 됐다.

2017년 5월 23일, 또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은 정치적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감사 지시가 떨어진 뒤 이명박 전 태통령은 혀를 차며 헛웃음을 지었다지만, 측근들은 반발했다. 4대강 사업 네번째 감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문재인 정부 감정의 앙금이 만든 ‘정치 감사’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해가 바뀐 2018년 3월 21일 문재인 정부의 검찰은 뇌물수수와 횡령 등 10여가지 혐의로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영장을 청구, 결국 감옥으로 보냈다. 전두환·노태우·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비리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다섯번째 전직 대통령이자, 헌정(憲政) 사상 네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됐다. 1년 새 전직 대통령 2명이 수인(囚人)이 됐다. 대한민국 대통령 잔혹사의 유일한 예외였던 그도 비극의 대열에 섰다.

2018년 5월 23일, 고 노무현 대통령 9주기를 맞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은 추모객으로 들썩였다. 이날 서울 서초구 법원 종합청사 417호 대법정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공판이 열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첫 재판을 받은 곳과 같은 장소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1~24일 1박 4일 일정으로 한미정상회담차 ‘원포인트’ 미국 방문에 나섰다. 워싱턴 D.C.에서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4·27 남북한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지났다. 5년 가운데 1년이니 아직은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 정권의 첫 1년은 나머지 4년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난 남북 정상회담 직후 80%를 넘어서기도 했던 지지율은 여전히 70%대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얻은 투표율(41.1%)과 수치로만 비교하면 문재인 정부 1년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1년은 ‘적폐청산’으로 날이 밝고 날이 졌다. 하지만 당파적 이해, 정략적 접근으로 정치적 보복에 이르면 진짜 적폐의 크기만 키울 뿐이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계승자다. 취임 1년을 넘긴 가운데 어떤 방향으로 승화시켰는지를 되돌아 볼때가 됐다. 지금의 영광과 기회가 전임 대통령이 아집과 무능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 ‘여생도 남에게 짐이될 일 밖에 없다’는 말을 남겼다. 여생을 짐으로 여겨야 했던 지점에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이 자리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은 취임 때는 한결같이 어느 정파의 수장이나 지지자들의 지도자가 아닌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물러날 때가 됐을 땐 불행한 대통령, 논란의 대통령이 된 것은 자신만이 옳다는 판단 아래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독선 때문이었다.

권력을 휘두르는 데는 제왕적이지만 정책은 국회에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의 대통령제는 수명을 다했다.

성공하려는 정치인과 정치 집단이 갖춰야할 덕목은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열린자세’라고 한다.1년 전 5월 23일과 2018년 5월 23일을 보내면서 4명의 대통령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파노라마는 비극이 아니면 희극이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