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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리 칼럼] 비교되는 삶…`3등급’ 박상진 vs `4관왕’ 이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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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규성 울산박물관 학예연구관
  • 승인 2018.08.08 22:30
  • 댓글 0

독립투사 박상진 vs 매국노 이완용
같은 민족이지만 정반대의 삶 살아
2019년 `3․1운동 100주년’ 앞두고
독립운동 성지 울산서 정신 기려야 

 

나라가 망해가고 있던 시대에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계란꽃(Erigeron annuus)이 전래돼 전국에 퍼졌다. 백성들은 망할 ‘망(亡)’자를 넣어 이것을 개망초라 부르며 망국의 설움을 달래곤 했다. 해마다 6~8월이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개망초를 보며, 독립투사 박상진 의사와 매국노 이완용을 비교하며 생각해 본다.

먼저, 3등급 박상진(1884~1921)과 4관왕 이완용(1858~1926) 이다. 박 의사는 경주최씨 부잣집에 장가들어 편안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에 투신 목숨은 물론 재산마저 날려버린다. 판사시험에 합격해 1910년 평양법원에 발령 받았으나, 망국으로 바로 사직하고, 1911년 만주지역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15년 대한광복회를 설립, 초대 총사령이 돼 김좌진 부사령 등 흩어진 독립운동의 힘을 하나로 묶어 전국적인 조직을 만들고 무장투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18년 일제에 피체돼 1921년 대구 형무소에서 일제에 의해 짧은 절명시를 남기고 순국하게 된다. 광복 후, 1963년 우리 정부에서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 훈장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이은 3등급에 해당되는 훈장이다.

이완용은 매국하는 과정에서 4관왕을 달성했다. 한때 독립협회 활동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이후 철저하게 배신자의 길을 걷게 된다. 1905년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한 을사늑약에 서명해 ‘을사5적(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이 됐고, 1907년에는 일제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행정권 박탈과 군대해산 등을 위한 정미7조약에 서명해 ‘정미7적(고영희, 송병준, 이병무, 이완용, 이재곤, 임선준, 조중응)’이 됐다. 1909년에는 혼자서 기유각서(己酉覺書)에 서명해 사법권마저 일본에게 넘겨줬다. 그리고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조약에 서명하여 경술국적 8인(이완용, 윤덕영, 민병석, 고영희, 박제순, 조중응, 이병무, 조민희)에 이름을 올려 4관왕을 달성했다. 그는 민족을 팔아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69세에 와석종신(臥席終身) 자연사 했다.

다음은 돈에 관한 얘기다. 독립운동을 시작한 박 의사는 독립군 운영, 무기 구입 등 많은 자금의 필요성을 느껴, 1912년 1,000석군 재산이 넘는 농토 900 마지기를 내어 평양의 김덕기, 전주의 오혁태와 함께 세 사람의 이름 중 한글자를 따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를 대구에 설립해 독립군 자금확보 및 독립운동 거점으로 활용했다. 또한 국내에서 부호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는 역할(good begger)을 했다. 특히, 협조하지 않는 친일부호들을 처단하기도 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먼저 사재를 내어 놓음으로써 자신의 재산은 없어진 것이다.

반면, 이완용은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많은 돈을 받았다. 정미7적 대가로 10만원, 경술국적의 대가로 15만원과 곡창지역인 경기도와 전라도 일원에 여의도 면적의 몇 배나 되는 땅을 일본으로부터 하사받았고, 훈1등급으로 귀족작위 백작도 받았다. 후일 재산이 더 늘어 300만원(현재 400억~500억 가치)이 됐고, 토지재산도 여의도 면적의 7.7배나 된다고 한다. 이같이 매국의 대가로 당대 최고 부자가 된 이완용은 일평생 잘 먹고 호의호식 했다.

이상 비교에서와 같이, 박상진과 이완용은 같은 민족인데도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고, 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내년 2019년은 3․1 만세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광복회 총사령을 출생한 울산시에서 많은 기념사업들이 행해지기를 바라면서, 박상진 의사의 절명시 마지막 부분을 음미해 본다.

조규성울산박물관 학예연구관


“이룬 일 하나 없이 저 세상 가려니, 청산이 비웃고 녹수가 빈정거리네. (無一事成功去 靑山嘲綠水嚬 무일사성공거 청산조녹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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