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사업부가 45개월째 수주를 하지 못하면서 20일 가동을 중단했다. 해양플랜트가 호황을 누렸던 2013년(왼쪽)과 달리 최근 해양 야드는 휑하게 비어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산업수도 울산이 흔들리고 있다. 도시를 지탱해온 산업이 흔들리고, 노동자들은 울산을 떠나고 있다. 두차례 구조조정을 한 현대중공업은 45개월째 수주가 없는 해양플랜트사업부의 ‘임시’ 가동중단을 택했다. ‘임시’는 기약이 없고, 5,000명 가까운 노동자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됐다. 현실은 일자리를 쥐어짜내야 하는 ‘고용절벽’이고, 정부가 내놓은 각종 지원정책은 멀기만 하다. 울산시가 추진하는 해상풍력발전시스템이 제2의 조선산업이 될 수 있을까. 현재 울산과 지역 노동자가 처한 상황을 짚고 그 대책을 고민해보려 한다.<편집자주>

<상> 문 닫은 현대重 해양플랜트사업부, 불안한 수천명의 노동자

‘말뫼의 눈물’은 울산에서도 울었다. 현대중공업 해양 야드에 있는 1,600t급 골리앗크레인의 이야기다. 2002년 스웨덴 말뫼시의 당시 세계적 조선소 코쿰스가 문을 닫으면서 현대중공업이 단돈 1달러에 사왔다는 골리앗크레인. 시민들의 눈물 속에 말뫼를 떠나왔던 골리앗크레인은 스웨덴 조선업의 몰락이자 우리나라 조선업 번영의 상징이었다. 이 크레인은 20일 마지막 물량인 나스르 프로젝트가 출항하면서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사업부의 가동중단에 따라 본업에서 떠난다. 남은 중량물을 정리하다 오는 10월부터는 육상플랜트 LPG저장탱크 제작에 투입될 예정이다

골리앗크레인은 15년만에 또다시 울산 노동자들의 눈물과 함께 조선업 불황의 가운데 서있다. 15년 동안 골리앗크레인과 함께 해양 야드에서 일했던 박종호(41)씨는 참담한 심경을 말했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일자리를 찾아 울산으로 왔고, 15년 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했다. 거대한 골리앗크레인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바라보면서 해양플랜트 배관 일을 시작했다. 몸은 힘들어도 수입은 꽤 괜찮았다고 했다.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현대중공업이라는 간판을 믿었다고 했다. 사내하청업체는 별 탈 없이 지난 십수년을 지나왔고, 그도 이제는 노련한 배관공이 되었다. 일은 익숙해졌고, 수입도 안정적이었다. 적어도 지난해 다니던 업체가 폐업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해양플랜트 일감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사정이 어려워진 회사는 지난해 말 폐업을 결정했다. 다행히 다른 사내하청업체로 옮겨 일을 하게 됐지만, 그도 그리 길지 않았다. 지난달 박씨는 실직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작업이 나스르 프로젝트였다.

다섯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박씨가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는 한달 160만원 남짓. 그의 급한 마음과 달리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합니다. 이리저리 일자리를 알아보고는 있는데 쉽지 않아요. 15년을 배관으로 먹고살았는데, 이제 와서 다른 일을 하려는 것도 힘듭니다. 육지 플랜트 쪽도 알아보고는 있는데, 울산은 일자리가 메말랐습니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끼리 여기저기 견적을 넣으면서 직접 일자리를 찾아 뛰고 있습니다. 마음은 급한데 녹록치 않네요.”

박씨는 15년 전 일자리를 찾아 울산에 왔던 때처럼, 다시 일자리를 찾아 울산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임시 가동중단된 현대중공업 해양 야드는 적막했다. 대형 구조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볼 수 없었던 야드의 바닥이 훤히 드러났고, 컨테이너 수십동만 경계선처럼 줄지어있었다. 골리앗크레인을 포함한 여러 크레인은 빈 줄을 걷어 올리고 덩그러니 서 있었다. 다른 중장비들도 널브러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의 발인 오토바이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사업은 1983년부터 시작됐다. 유가 상승 등 대내외적 호재 덕에 수주가 끊이지 않았고, 2013년과 2014년 연매출은 4조7,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5년 신규 수주 실적이 10분의 1로 떨어지면서 적신호가 켜졌다.(2014년 60억달러→2015년 5억7,200만달러) 매출도 하락세로 돌아서더니, 지난해에는 2조5,880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2014년 11월 나스르 프로젝트 이후 45개월 동안 수주는 ‘0’건이다. 이날 나스르 프로젝트 출항을 끝으로 해양플랜트사업부는 임시 가동중단에 들어갔다.

지난 3년 현대중공업 조선과 해양이 모두 고전하는 동안 구조적인 모순은 사내하청업체들의 목을 조였다. 저가 수주는 기성금 하락으로 이어졌고, 견디다 못한 업체들은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나갔다. 300곳에 달했던 업체 수는 132곳(7월 초 기준)밖에 남지 않았다. 4만5,000여명이었던 사내하청노동자 수도 1만2,000여명으로 줄었다. 이미 3만여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현대중공업의 해양플랜트사업부 가동중단 소식은 다시금 노동자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무급휴직이냐 유급휴직이냐를 두고 노사가 갈등하는 2,600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박씨와 같은 해양 사내하청업체 12곳의 2,000여명 노동자들 앞에 놓인 길은 ‘실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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