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떤 태풍 ‘솔릭’ 엉뚱한 곳 사라져
‘구라청’ 오명 벗을 원인 제거 나서야
올들어 고용·소득관련 통계 악화일로
‘빈부격차 최악’ 청와대 심기 건드려
정책 담당자 책임 통계에 물어 황당
편견개입 숫자로 분식되기에 더 위험

‘기상청 직원들이 야유회 가서 비를 만났다.’ 기상청이 자주 틀린 기상예보를 비꼰 얘기다. 지난 24일 한반도를 빠져나간 태풍 ‘솔릭’ 뒷 얘기가 무성하다. 수도권 출근길을 강타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태풍 진로가 남하했고 세력마저 약해지면서 ‘구라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다시 떠올랐다.
시작 전에 요란한 예고와는 달리, 막상 뚜껑을 열면 아무것도 아니어서 허무하게 만드는 상황을 태풍 ‘솔릭’에 빗대어 만든 신조어가 ‘솔레발’이다. 등장하기 전에 겁만 잔뜩 주고 조용히 떠나는 모습을 ‘솔릭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같은 바다를 공유하고 지리적 위치도 비슷한 일본 기상청이 ‘솔릭’의 예상 경로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해 우리 기상청과 대조를 이뤘다.
기상청의 오보 논란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특히 이번 태풍경로 이탈과 세력 약화는 기상청 입장에서 할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수백 km에 달하는 지구적 기상현상인 태풍은 현재 관측 기술로 오차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수십 km 경로 오차는 분석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기상청과의 태풍 경로 오차 비교에서도 우리 기상청은 지난해 일부 기준에서는 오히려 정확도에서 앞서기까지 했다. 3시간 단위로 태풍 이동 경로를 분석하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세운 직원들은 최근의 비난이 야속할 수 있다. “재난예보는 보수적이어야 한다”며 도 넘은 시민들의 기상청 조롱을 비판하는 시민들도 있다.
하지만 기상청이 해야할 일은 기상청을 조롱하는 시민들에게 분노할 일이 아니다. 기상청은 내일 일어날 일을 오늘 알아내야 하는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하는 특수 국가기관이다. 결과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오보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6일 ‘최저임금 인상 효과 왜곡’ 논란에 휘말린 황수경 통계청장과 태풍 ‘솔릭’ 한반도 북상 이동경로를 비롯해 여러차례 오보를 냈던 남재철 기상청장을 전격 교체했다. 2017년 7월 임명된 두 청장 모두 1년 2개월만에 물러났다.
신임 기상청장이 할 일은 양치기 소년이라는 오명을 벗을 현실적이면서 성급하지 않은 대책 마련이다. “지금 얼마나 부족한 자료를 갖고 예측하는지 알면 놀랄 것”이라는 태풍예보 실무자의 토로가 토로에 그치지 않고 대안 마련으로 이어져야 한다.
“세상에는 세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빅토리아 황금기의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이다. 국정 책임자가 느끼는 통계의 유혹에 대한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모든 정부는 장밋빛 통계를 기대한다. 그러니 결과를 분석하거나 입맛에 맞는 수치만 골라 현실을 가리거나 왜곡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최근 통계청에선 재난에 가까운 고용감소와 소득분배 악화를 보여주는 통계를 발표한 바 있다. 갑작스러운 통계청장 교체는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고용·소득 통계는 올해 들어 온통 악화되는 것 뿐이다. 실업률이 18년만에 최고로 치솟고, 실업자가 7개월째 100만명을 웃돈다. 지난해 월평균 30만개 늘어났던 일자리가 월 10만개 선으로 떨어졌다가 급기야 지난달에는 5,000개 증가에 그쳤다.
특히 지난 1분기 빈부 격차가 최악이었다는 통계가 청와대 심기를 건드렸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경제지표를 거론하며 “올바른 경제 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밝힌 데 대해 ‘팩트 오류’ 논란이 일고 있다. 동시에 국가 통계를 관장하는 통계 청장이 전격 교체되자 우려의 소리가 높다. 경제 지표에 관한 해석을 놓고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아전인수식 해석이 빈번한 데다, 청와대의 시각에 맞게 통계 자료까지 꿰맞추려 한다는 지적이다.
신임 통계청장을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전격 교체해, ‘코드 통계’를 더 기대한다는 의심까지 자초했다. 강신임 청장은 지난 5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 90%’ 취지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청와대 지시에 따라 노동연구원 관계자와 함께 그가 내놓았던 분석 결과는 왜곡된 것이었다.
통게청은 우리나라의 각종 통계 지표를 조사·발표할 뿐 정책을 구상하거나 시행하는 곳이 아니다.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황 청장을 경질한 것은 통계청의 업무 결과가 마음에 안들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정책 부서장이 아닌 통계청장이 경제지표에 책임을 지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통계는 모든 정책의 근거다. 코드 해석도 위험하지만, 통계의 ‘코드작성’은 더 위험하다. 국정 난맥은 당연하다. 통계자료는 ‘술 취한 사람 옆의 가로등’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정부라면 자기합리화 동원 유혹부터 떨쳐내야 한다. 그러긴 커녕 되레 집착하는 것으로 비치는 정부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지금 모든 고용·소득통계가 가리키는 것은 정부의 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 난 것은 놔두고 불이 났다고 알린 사람을 자른다. 통계를 입맛대로 꿰맞추면 고용이 늘고 저소득층 소득이 올라가겠는가.
“바보들만 중국의 통계를 믿는다”는 말이 있다. 중국 각 성(省)이 집계한 지역내 총생산(GRDP)을 모두 합하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았다. 중국 지방정부의 통계 숫자 뻥튀기는 구조적이다. 숫자가 잘 나와야 지방정부책임자는 더 좋은 자리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시대에 뒤쳐진 통계를 방치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막는 국가적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편견이 개입될 때도 숫자로 분식되기에 더욱 위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