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말맞추기’ 증거인멸 우려 구속영장 신청… 검찰 청구
법원 “공범자와 사건 사전 논의 등 방어권 보장 위해 허용”

▷속보= 간호조무사에게 ‘대리수술’을 지시한 의혹(2018년6월13·11일,5월30·24일)을 받고 있는 울산의 한 대형 산부인과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피의자들의 ‘말맞추기’ 증거를 확보한 경찰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허용된다”고 판단했다.

13일 울산지방경찰청과 울산지방법원에 따르면 의료법 위반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울산 중구의 한 산부인과 공동경영진인 원장 A씨와 간호조무사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경찰은 A씨 등 6명을 입건해 이 병원의 ‘대리수술’ 의혹을 수사해왔다. A씨를 비롯한 4명의 의사가 간호조무사나 간호사 등 의사면허가 없는 무자격자들에게 요실금 등 수술을 지시한 혐의로 입건됐다. 이 지시를 받은 비의료인이 ‘안 실장’이라 불리는 B씨다. 그는 2014년 12월부터 올 5월까지 이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수차례 수술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의사의 지시를 받고 2015년께 3차례에 걸쳐 봉합 수술을 한 혐의로 간호사 1명도 입건 대상자에 포함됐다.

경찰은 이들 피의자 가운데 A씨와 B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불법 의료행위 당사자와 지시자인데다 이들이 서로 ‘말맞추기’를 한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A씨와 B씨는 경찰에 출석하기 전 혐의를 인정하고 부인할 내용 등을 협의했고, 다른 피의자나 참고인들과도 미리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 등을 통해 이들의 대화가 담긴 휴대전화 SNS 메시지 등을 확보한 경찰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도 이를 받아들여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맡은 정재욱 판사는 “범죄혐의 중 상당부분에 대한 소명이 있고, 범행에 대한 사회적 비난가능성도 높다”면서도 “피의자에 대한 구속 사유나 필요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증거인멸의 우려라는 부분에서 “구속사유는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보장과 직결되는 문제로, 피의자와 변호인이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공범자와 사건에 관해 사전 논의를 하거나 사건 관계자로부터 사정을 청취하는 것은 방어권 보장을 위해 허용된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의자를 비롯한 참고인 등 사건관계자의 진술은 수사 과정에서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중요한 요소다. 특히 해당 병원의 인사권자인 A씨는 주요 참고인에 해당하는 병원 관계자들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한 법원의 설명은 피의자들이 자신의 방어권을 위해 다른 피의자 또는 관계자들과 말을 맞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말맞추기’는 다른 여러 사건의 사전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증거인멸의 우려’ 요소로 고려되고 있다.

법원 측은 “그동안 광범위한 수사를 통해 확보된 증거자료에 비춰 피의자가 방어권 행사 차원을 넘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구속영장을 재신청하지 않고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미 관련 내용을 충분히 소명했지만 법원이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재신청할 근거가 없다”며 “조만간 수사를 마무리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