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근이 화장실에서 이빨을 딱딱거리면 전파가 나간다”“이수근의 눈 속에는 카메라가 장착되어서 눈을 깜빡거리는 순간마다 사진이 찍힌다” “이수근은 이중간첩이다” 북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해서 이수근을 면담했던 미 버클리대 교수 로버트 스칼라피노도 그의 언동이 의심스럽다고 중앙정보부에 이야기했다.

1967년 3월 22일 242차 판문점 군사정전위 본회의 때 북한 중앙통신 부사장이며 판문점 출입기자였던 이수근(당시 44세)의 북한 탈출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데 왜 북한을 탈출했나? 그는 기사 편집과정에서 실수를 해 김일성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위협을 느꼈으며 독재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수근은 1968년 9월 모 대학 여교수와 결혼하는 등 남한에 정착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수근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북한 탈출 1년 10개월만인 1969년 1월 27일 그가 서울을 탈출해 세상을 또 한번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가발과 콧수염으로 위장한 이수근은 1월 31일 캄보디아 푸놈펜으로 향하던 비행기의 중간 기착지인 월남 사이공의 탄손누트 공항에서 체포되었다. 69년 2월 14일 중앙정보부는 “끈질긴 추적 끝에 홍콩을 경유, 북한으로 가려던 이수근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수근은 위장귀순이자 이중간첩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한국 수사당국의 그런 발표를 전해듣고 이수근의 체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미국 CIA 관계자들은 웃었다고 한다. 탈출 동기는 중앙정보부가 ‘이중간첩 혐의’로 몰아가려는 압박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1969년 5월 1심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항소를 하지 않아 두달 후 사형이 집행됐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2018년 10월 12일 재심(再審)에서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여권위조 등 일부 혐의엔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낙인 찍혀 생명을 박탈 당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49년만에 벗게 된 누명이 실감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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