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간직한 울산 천연기념물 4호 ‘처용암’
    단순한 관광 넘어 ‘망해사’ 등 역사 연계된
    처용기념관 건립으로 우리의 유산 보존을

 

김현우
처용탈제작자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처용설화가 있다.
설화에는 처용암과 망해사가 등장 하는데 실제로 울산에 있는 지명이고 사찰이다. 처용암은 남구 황성동 외항강에 있는 작은 섬이다.
울산광역시 천연기념물 4호로 지정돼 지금은 일반인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관리되고 있는, 온통 바위로 이뤄진 섬에 몇 평 되지는 않지만 흙으로 이루어진 평지가 있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입석이 있고 입석 앞에 대리석 석단이 있다. 전에는 해마다 그곳에서 처용문화제 전야제 때 처용할아버지께 제를 올리는 장소였다.

한 때 경주인이 천하의 명당인 그 자리에 자기 아버지의 묘를 써서 인근 마을에 줄초상이 일어나서 수소문 끝에 묘를 쓴 사실을 알고 파묘를 하자 재앙이 멈추었다고 한다. 처용암 앞의 세죽마을이 있던 곳은 영험이 있는 장소로 예전에는 처용 넋맛이 굿을 했고 지금도 무속인들이 찾아 촛불을 켜 놓고 기도드리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처용암 앞의 세죽마을도 지금은 없어지고 공원화됐지만 그 자리에 처용가비가 세워져 있다. 처용가비는 지금은 한문으로 돼 있는데 동국대학교 양주동 박사와 서울대학교 김완진 교수, 일본인 오꾸라 신뻬이(소창진평)가 처용가를 해독해 논란의 여지가 있어 한문으로 된 처용가비를 세워 놓았는데 필자는 이는 잘못된 것이라 주장한다.

지금이라도 새로이 현 처용가비 옆에 양주동 박사가 해독한 처용가나 아니면 널리 알려진 현대적인 처용가를 새로이 세워서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읽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처용가는 천년이 넘는 우리의 유산이다.
지금도 처용암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냥 처용가비 앞에서 기념사진이나 찍고 돌아갈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는 처용가를 세울 시점이다.
세죽마을이 철거됐고 처용가비 앞에는 사당이 한 채 있었다. 처용사당은 마을 뒤편 산에 있었고 그 사당은 마을 사람들이기도 하던 사당이었다고 한다.

없어진 것을 다시 만들기는 쉽지 않겠지만 처용사당 자리를 찾아 다시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가지 더 욕심을 낸다면 공원화 된 그곳에 처용기념관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처용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처용탈과 처용무복까지 모아서 전시 하면 처용암을 찾는 사람들이 멀리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처용암만 바라보고 가지 않고 무언가 실속 있는 관광이 될 것이다.

망해사는 헌강왕이 개운포에서 동해 용왕을 만나고 서라벌로 돌아가 지은 절이다. 임진왜란 때 불 탔다는 설도 있으나 조선 후기 폐허화된 절을 1962년 영암스님이 중창, 현재 대한불교태고종에 소속된 사찰이다. 대웅전 위로 올라가면 보물로 지정 된 망해사지 승탑 2기가 있고 승탑 위편에 공터가 있는데 그 곳에는 여러 개의 주춧돌이 깔려 있어 옛 망해사 자리로 추정된다. 현재 대웅전 외벽 뒤편에는 처용설화에 등장하는 동해용왕과 헌강왕이 만나는 장면을 그린 벽화와 망해사를 짓는 그림들이 남아 있다.

망해사 인근 민간설화에는 서라벌에서 벼슬을 하며 왕정을 보좌했던 처용이 나이가 들자 망해사로 와서 작은 연못에서 용으로 화해 동해바다로 돌아갔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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