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보석’ 아름다운 정원 ‘산젠인’
‘포장 잘하는 문화’ 지방 살리는 힘
어딜가나 풍경 비슷한 우리와 대조적

작년 ‘16억장’ 주고 받은 연하장 문화
개인·가족 컬러사진 넣은 ‘근하신년’
까마득한 연하장 보낸 기억 떠올라

 

김병길 주필

한 해 5,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는 역사 도시 교토(京都)에는 가을단풍을 즐기는 인파로 넘쳐났다. 794년 간무 천황이 수도로 정한 뒤 150년 전 1868년 메이지유신 때 도쿄로 천도할 때까지 정치 경제 중심지였다. 헤이안신궁(平安神宮) 등 사찰 1,500여 곳과 신사(神社) 200여 곳 등 유적들이 역사를 말하고 있다.

니조성(二条城)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에 거주할 목적으로 1603년 3월에 쌓은 성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도쿠가와 막부가 시작된 것도 니조성이고, 도쿠가와 가문의 15대 장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가 통치권을 일왕에게 넘겨주는 다이세이호칸(大政奉還)이라는 막부 정치의 폐막을 알리는 사건이 일어난 곳 역시 니조성이다.

교토는 일본 제1의 역사 문화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학도시다. 알려진대로 교토대학은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 명문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은 민족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의 모교이다. 붉은 벽돌의 이국적 건물이 많이 눈에 띄는 캠퍼스에는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특히 윤동주 시비에는 그의 시 ‘서시(序詩)’가 친필 그대로 새겨져 있다. 시비 앞에 가득 꽂혀있는 연필과 펜이 눈길을 끈다. 윤동주 시비는 1995년에, 정지용 시비는 2004년에 각각 세워졌다.

교토시 북부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 오하라에는 소설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가 ‘동양의 보석상자’라고 극찬한 아름다운 정원 산젠인(三千院)이 있는 절이 있다. 산젠인의 매력은 불상이나 건축물보다는 정원을 가득 메운 푸른 이끼와 거대한 삼나무. 그리고 정원 곳곳에 있는 아주 작은 불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끼를 이용해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름다운 정원 유세이엔(有淸園)의 단풍은 절정의 가을을 말하고 있었다. 

일본은 참 포장을 잘한다. 고급 식빵 붐은 오사카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진 경우다. 일본의 ‘포장 문화’는 지방을 살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지역마다 고유의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어딜가나 비슷한 관광상품이 많고 풍경도 닮은꼴이다.
일본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이질감은 실로 다양하다. 양파 껍질처럼 속속들이 겹겹이 쌓여진 천황제에 대한 집착, 남에게 ‘메이와쿠’(迷惑,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철저한 예절문화가 있다. 그밖에 질서강박증, 그러면서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폭력적이거나 관대한 성(性)문화, 인간관계의 정형화와 형식문화 등을 나열할 수 있다.

여류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아쿠타카와상·군조신인문학상 등 일본의 신인문학상 5개를 휩쓸었다. ‘편의점 알바 출신 소설가’로 유명한 그에겐 ‘미친·괴물·5차원’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7개 언어로 번역된「편의점 인간」의 영문판이 나오자 뉴욕타임스(NYT)·가디언 등이 기사를 크게 다뤘다. 최근 그의「멀리 갈 수 있는 배」가 우리글로 출간됐다.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따르고 있는 일본의 ‘편의점 문화’는 다채롭다. 11월의 일본편의점에서는 ‘연하장 인쇄 주문을 받는다’는 홍보물이 눈길을 끌었다. 이메일과 소셜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에 연하장이 여전한 나라가 일본이다. 

시대와 동떨어진 느낌이 있긴하나 일본의 연하장 문화에는 독특한 그 무엇이 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라는데도 작년에만 16억장에 달하는 연하장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연말연시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보낸 기억이 까마득하다. 연하장 문화를 끈질기게 간직하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편의점에 연하장 모델에는 근하신년(謹賀新年) 인사와 함께 개인이나 가족 컬러 얼굴 사진도 인쇄돼 있었다. 2019년 돼지띠 해를 맞아 ‘복돼지’ 그림도 눈에 띄었다. 편의점에는 이런 시즌 상품이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매장’이란 이미지를 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편의점의 숙명이다.

우리들은 쓰지 않는 ‘망년회(忘年會)’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여전히 쓰이고 있는 그들의 말이다. 망상, 망령, 망신 등 ‘망’으로 시작하는 말들이 대개 안 좋은 뜻이다. 국립국어원에선 일본식 ‘망년회’ 대신 송년회(送年會)로 쓰기를 권장하고 있다.

한자 그대로 망년(忘年)은 ‘한 해를 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억만큼 묘한 것이 망각이다. 그런데 한해를 잊는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쉽게 잊히지 않는 ‘망년’이다.

‘올해도 이렇게 가버리는구나’라는 상실감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두에게 ‘나를 힘껏, 가장 따스하게 스스로 꼭 껴안아주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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