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신현배 시인 '보리뿌리점' 육필원고.  
 

보리뿌리점



보리뿌리점을 친다.

입춘날 아이들이

보리밭에 모여

언 손 호호 불며

보리뿌리점을 친다.



고추장빛 노을에 밥을 비벼 먹고 싶은 남이, 숭늉 빛깔 하늘의 별이 되고 싶은 영이, 진달래 꽃잎 붙여 지진 떡 먹고, 꽃굴레 쓰고 노는 산놀이가 꿈인 순이



한자리에 모여

불 지핀 소망을 안고

보리뿌리점을 친다.



얼어붙은 땅을 파내 보리 뿌리가 세 가닥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작, 가닥이 보이지 않으면 흉년이라며 올해의 가난을 엿본다.



모두들

밥풀눈이 된다.



●가난이 수묵화처럼 내걸렸던 시절, 겨울방학이 끝나는 입춘쯤이면 어김없이 연례행사가 시작되었다. 학교 수업을 밀쳐둔 조무래기들이 옆으로 길게 손을 맞잡고 푸석푸석한 밭이랑을 꼭꼭 밟아주었다. 이는 파랗게 올라온 보리 싹에 상처를 줌으로써 잎은 성장을 더디게 하고 뿌리는 더 깊게 내리게 함으로써 풍년을 유도한다는 저 오랜 조상의 지혜였던 것이다.

동시 『보리뿌리점』 속에는 당시의 아이들 꿈이 구수하게 담겨있어 참 좋다.



●시인·아동문학가 신현배(申鉉培·1960년~ ). 서울 출생. 1982년 월간 〈소년〉 誌에 동시 천료로 문단 데뷔. 1986년 조선일보(동시: 보리뿌리점), 1991년 경향신문(시조: 동치미) 신춘문예 당선. 동시집 《거미줄》, 《매미가 벗어 놓은 여름》, 《산을 잡아 오너라!》, 《햇빛 잘잘 끓는 날》, 《신현배 동시선집》 외. 창주문학상, 청구문학상, 광명문학대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수상 외. 한국동시문학회 부회장 역임. 「쪽배」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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