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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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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9.03.1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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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이 가장 사랑한 꽃 봄의 전령사 ‘매화’
선비의 기개 등 빗대어 시문학에 자주 등장
매화의 계절, 전국 곳곳 고결한 향기 가득해

이병근시인․문화평론가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조선 4대 문장가 문신 신흠의 ‘상촌집’ ‘야언(野言)’에서 ‘설중매’를 두고 한 말이다. 엄동설한 속에서도 홀로 고상하게 피어나서 꺾일지언정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설중매의 고매한 자태를 의인화해 선비의 기개와 지조에 빗대어 한말이다. 옛 사람들은 덕성과 지성을 겸비한 선비를 군자라 해, 매화를 군자의 기상을 상징하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의 중에서 으뜸으로 여겨 ‘매난국죽’의 맨 앞에 뒀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자연의 사물은 많겠으나, 꽃을 들먹이자면 벚꽃, 개나리, 진달래 등 봄을 알리기에 대표적인 꽃이지만, 매화는 그들보다 앞서 봄기운을 느끼게 하므로 봄의 전령사라 불리기도 한다. 매화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기에 ‘조매’,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 등, 또 색에 따라 희면 ‘백매’, 붉으면 ‘홍매’라 부른다. 그리고 고결한 향기 ‘청매’, 교교한 달빛아래 ‘월매’ 등 자연이 자아내는 환상적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리는 매화를 개인적인 감성에 담아 이름을 짓기도 한다.

문화유적 탐방 일환으로 ‘삼국유사 현장’을 찾아다닌 때가 있었다. ‘삼국유사’ 제5권 피은에 신충이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에 들어가 왕을 위해 세웠다는 ‘단속사’를 탐방하게 됐는데, 건립 당시 웅장했던 대가람의 자취를 찾아볼 수는 없고 잘 다듬어 진 절터와 금당으로 짐작되는 마당 앞 좌우 동서 3층 석탑(보물 제72호)이 씩씩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매화나무로서는 가장 오래된 ‘정당매(수령 약620년)’라는 매화나무를 만나게 됐다. 이 매화는 고려 말 ‘강통정공’이 단속사에서 글공부를 할 때 심었던 것으로 과거에 급제해 벼슬이 정당문학에 이르렀으므로 ‘정당매’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 지방에 나랏일로 오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단속사를 찾아서 매화를 감상하고 시운에 맞춰 시를 써서 문 위에 걸어놓곤 하였단다.

오늘 날 전국에 걸쳐 매화축제가 열린다. 광양 매화축제, 제주매화축제, 양산 원동매화축제 등이 지금 한창이다. 매화나무 유명하기로는 순천 선암사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와 강릉 오죽헌 율곡매(천연기념물 제484호), 장성 백양사 고불매(천연기념물 제486호) 등이 있으며, 꼭 천연기념물이 아니더라도 이름난 매화나무는 나라 구석구석에 있다. 조선 선비들이 얼마나 매화를 좋아 했는지 그 정황을 살펴보자면 혹한에도 늘 푸르고, 잔설 속에서도 꽃 피우는 ‘송죽매’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했으며 그중에서도 매화를 더 귀히 여겼다.

퇴계 이황선생의 퇴계매화시첩(退溪梅花詩帖)은 시공간을 넘어서 시문학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도산 달밤에 매화를 읊다’라는 시에서, “뜰을 거니니 달이 사람을 따라오고/매화나무 가장자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가/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남을 잊었더니/향은 옷에 가득 꽃 그림자는 몸에 가득/늦게 핀 매화의 참뜻을 새삼 알겠으니”라고 노래 할 정도로 매화에 향한 선생의 애정은 당신이 운명하는 순간까지도 ‘저 화분에 있는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고 했다. 또한 이육사의 ‘광야’라는 시에서도 매화가 선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가를 알 수 있다. ‘지금 눈 내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른 봄날 통도사 ‘무풍한송로’를 누구나 시인의 낭만으로 걸어서 일주문을 지나 영각 앞마당에 이르면 홍매화를 만난다. 홍매화의 다른 이름은 자장매(慈藏梅)다. 임진왜란 후 통도사 중창에 나선 우운대사가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축조하고, 영각 상량보를 올리고 낙성을 마치니 마당에 홀연히 매화 싹이 자라나 해마다 음력 섣달에 연분홍 꽃을 피어내니 이 신통한 꽃을 보고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뜻이려니 해 ‘자장매’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송나라’ 시인 임포는 매화를 보기만 하면 바로 시가 나온다고 해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에게 ‘매화는 아내이고 학은 자식’이라 할 정도로 매화를 사랑했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매화 사랑은 그 보다 더 해서인지, 시방 남녀노소 누구나 가슴에 매화 스무송이(천원 지폐 앞면)쯤은 거뜬히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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