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필드대 한국학과, 한국어강좌 개설 40주년 기념해 영국 최초 장승 설치
김진식 작가 셰필드 현지에서 장승 제작 퍼포먼스, 영국 대학생 풍물 축하공연도

18일 오후 영국 중부의 한 명문대 교정에서 커다란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모인 30여 명의 대학생들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기념 사진 촬영에 한창이었다.

학생들을 그토록 즐겁게 한 존재는 바로 대한민국의 장승. 캠퍼스 한복판에 사이좋게 자리한 남녀 장승 한 쌍에는 ‘셰필드대장군’, ‘셰필드여장군’ 이라는 한글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이곳은 영국 사우스요크셔(South Yorkshire) 지역의 명문대학인 세필드대학교(The University of Sheffield). 학생들은 이 학교 한국학과 1학년 신입생들이었다.  

셰필드대는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철의 도시’(Steel City) 셰필드에 1905년 설립됐다. 맨체스터, 리버풀 등 6개 산업 도시에 세워진 ‘붉은 벽돌’(Red brick) 대학의 일원이다. 셰필드는 산업 도시에서 자연과 환경, 교육 도시로 탈바꿈해 영국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로 정평이 나있다. 특산물은 산소 함유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신선한 공기’이다. 

셰필드대가 특별히 한국인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유럽 최고 수준의 한국학과가 있다는 점이다. 유럽 전역에서 한국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한국을 배우고 연구하고자 모여든다.

최근 유럽이 방탄소년단, 엑소, 트와이스 등에 열광하면서 셰필드대 한국학과는 몰려드는 학생들을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다. 한류에서 출발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역사, 정치, 경제로까지 넓어지면서 전공자들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2004년 단 1명, 2006년 3명이었던 신입생 수는 지난해 60명으로 수직 상승했다. 현재 총 학생수는 130명에 이른다.

10년 전 학생수 부족으로 학과 폐지 위기에까지 몰렸다가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기사회생했던 과거는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됐다. 셰필드대 동아시아학부(School of East Asian Studies)에 같이 소속된 중국학과, 일본학과가 보내는 부러움의 눈길도 익숙해진 지 오래다.  

한국학과의 신입생 수는 6년 전에 중국학과를 3년 전에는 일본학과를 넘어섰다. 현재는 동아시아학부 신입생 중 절반이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런 호시절 속에 한국학과는 올해 한국어 강좌 개설 40주년, 한국학 학위 개설 25주년을 맞았다. 뭔가 의미있는 이벤트를 물색하고 있을 때 교환교수로 온 동양대 황종규 교수의 제안으로 장승 설치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2005년부터 한국학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조숙연 주임 교수가 학교 측 설득에 나섰다. 한국 전통문화와 장승 생김새에 매료된 코엔 람버츠(Koen Lamberts) 총장과 휴고 돕슨(Hugo Dobson) 동아시아 학과장 등 대학 관계자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조 교수 등은 주영한국문화원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한옥을 짓는 대목수이자 장승 조각가인 김진식 작가를 초청해 장승 제작에 나섰다. 나무는 셰필드에서 교정 관리를 위해 베어낸 참나무를 활용했다.  

드디어 지난 10일 영국 대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동자를 그려넣는 점안식과 띠를 둘러주는 채단식 등 장승 제작 퍼포먼스가 열렸다.  

여기에 셰필드대 음악대학 앤드루 킬릭(Andrew Killick)교수가 이끄는 학생들의 풍물패 공연도 곁들여져 의미를 더했다. 킬릭 교수는 조숙연 교수의 남편으로 한국 전통음악에 반해 한국 유학중 조 교수를 만나 결혼했다. 

이번에 셰필드대에 세워진 장승은 영국에 설치된 최초의 장승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자인 김진식 작가는 “한국에서도 전통문화가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에 멀리 영국 땅에서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져서 장승까지 세우게 돼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러시아와 사이판에도 고려인 축제와 한국인 희생자들을 위해 장승을 만들었는데 앞으로도 장승을 전세계에 알리고자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숙연 교수 역시 “장승이 세워진 장소는 대도서관 옆으로 학생회관으로 향하는 길목이어서 통행량이 가장 많다”면서 “많은 학생과 교직원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장승에 관심을 보이는데 해학적인 얼굴을 보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반응을 전했다. 

조 교수는 “장승을 설명하는 푯말을 세우고 쉬어갈 벤치도 설치할 계획”이라면서 “장승이라는 한국의 멋진 예술작품이 영국과 유럽에 한국을 더욱 널리 알리는 새로운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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